프랑코 독재때 좌파정치인 등의 아기 빼돌려 살해·암매장하거나 팔아넘긴 사건
법정투쟁 벌여온 50세 여성, DNA 정보로 가족들 찾아내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스페인의 군부독재 시절 반체제 인사나 빈곤층 가정의 신생아들이 병원에서 몰래 빼돌려져 살해되거나 강제입양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 한 피해자가 50년 만에 진짜 가족들과 상봉했다.
이네스 마드리갈(50)은 11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미국의 한 DNA 데이터베이스의 도움으로 사촌을 찾아 가족들과 상봉했다고 밝혔다.
마드리갈은 2010년 자신이 1969년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몰래 빼돌려져 강제로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된 뒤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회견에서 그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퍼즐을 맞추게 됐다. 이제 내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엘파이스 등 스페인 언론이 전했다.
마드리갈의 친모는 2013년에 7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고 밝히고, 50년 만에 찾아낸 가족들의 신원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전직 산부인과 의사 에두아르도 벨라(86)가 출생기록 위조와 사기 등의 혐의로 작년 스페인 법정에 섰을 때 고소인이었다.
벨라는 1969년 마드리드의 자신의 병원 '산 라몬 클리닉'에서 태어난 마드리갈을 생모에게서 몰래 빼앗아 서류를 조작한 뒤 다른 여성에게 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생모에게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해 병원이 알아서 시신을 매장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페인에서는 인민전선 정부를 쿠데타로 뒤엎고 정권을 잡은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1892∼1975)의 철권통치 시절에 배후를 알 수 없는 신생아 납치나 강제 입양 사건이 횡행했다.
처음에는 독재정권의 편에 선 세력이나 그 하수인들이 공화주의 좌파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좌파 정치인이나 운동가들의 아이를 몰래 병원에서 빼돌려 죽인 뒤 암매장하거나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50년대 시작된 이런 범죄는 좌파진영을 넘어 빈곤층 또는 동거커플 등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들로까지 확대됐다.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종교적으로 신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그릇된 믿음이 작용한 것이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온 스페인의 시민단체 'SOS 도둑맞은 아기들'에 따르면, 이런 조직적인 '아기 빼돌리기'에는 산부인과 의사·간호사는 물론 스페인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들까지 광범위하게 연루됐고, 1987년 스페인에서 입양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법률이 시행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1950∼1980년대에 스페인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만 명의 신생아가 빼돌려져 강제입양되거나 살해 후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코의 독재 종식과 민주화 이후 이런 의혹이 2천건이나 제기됐다.
그러나 증거 부족과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실제 재판까지 이어진 케이스는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재판부는 산부인과 의사 벨라가 유죄라고 판단했지만, 공소시효가 끝났다면서 소를 기각했고, 마드리갈은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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