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양국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첫 관련 실무자 회동이 이뤄졌다. 일본은 '국장급 협의'를 바라보고 방일한 한국에 '과장급 설명회'로 격을 낮추고 파트너들을 싸늘하게 맞았다. 만남 목적도 서로 해법을 찾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문제점을 말하면 자기들은 듣는다는 식으로 정리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역시 한미일 3국 간 고위급 협의 모색에 일본의 답이 없다고 밝히며 아베 신조(安倍晉三) 내각이 보이는 소극적 태도를 거론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무역 보복 카드를 꺼낸 자민당 정권의 자세 변화를 쉬이 기대하긴 어렵다. 그럴 것 같았으면 파괴력 큰 수출통제에 애초 나서지도 않았을 거라는 전제에서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비록 실무자급이지만 만나서 문제를 짚은 것만도 우리로선 의미 있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각급 접촉 채널은 열어두고 상황 악화를 막는 것이 낫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가져오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미 행정부와 의회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절실하므로 청와대·정부 인사들의 잇따른 방미 행보는 당연한 처사로 이해된다. 정부가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에 일본의 수출규제를 긴급 안건으로 올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번 보복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통 우익의 표심을 결집하려는 단기 전술이냐, 아니면 한국 전자산업의 기반을 흔들어 일본의 열세를 뒤집으려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장기 전략 차원이냐는 판단이다.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양자다. 어느 쪽이든 우리로선 수용하기 힘들지만, 후자에 가까운 선택이라면 정부의 대응은 더욱 치밀하고 촘촘해야 한다. 당장 미국의 중재역은 그래서 더 긴요하다. 북한 비핵화와 대중국 전략 운용 및 역내 도전과제 대응을 위해 한일 양국의 협조가 모두 필요한 미국이다. 미국은 국무부 대변인의 말처럼 한미일 관계 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여" 일본이 보복 조처를 거둬들이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이 와중에 이란과 대립 중인 미국이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 역시 그중 하나라면 추후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한일 갈등 장기화가 우려되면서 의회의 초당적 외교와 민간의 지혜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국회가 이달 말 대표단의 방일을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뻔히 보이는 국익이 걸린 사안에 여야가 따로여선 안 된다. 의원 외교가 아베의 폭주에 제동을 걸 일본 의회와 사회지도층의 여론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산업계도 정부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나 가능한 선에서 정부와 보조를 맞춰 수입선 다변화 등 함께 노력할 부분은 같이하고 시민사회도 외교 전선에 동력을 보태면 좋을 것이다.
한일 사이에는 무역 보복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국 사법부의 징용 배상 판결 대처와 일본이 제안한 3국 중재위원회 구성의 수용 여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사의 일본 참여 추진 논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3각 공조 등 여러 난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적절한 시기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상회담만이 난국을 일괄타개할 수단이 될 거라는 관측이 여전한 이유다. 우리 국민의 일본 호감 여론이 12%로 떨어져 1991년 이래 최저치를 보였다는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민의 대일 정서 악화에 대한 책임 중 상당 부분은 우경화하는 아베 정권에 있다. 국민감정까지 결합하여 두 나라가 치킨게임식 대결에 나선다면 모두 패배자가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맹성하고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길 바라며, 이를 위한 우리 정부의 총력외교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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