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법인세 인하 경쟁 벌여온 흐름 뒤집는 것"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구글과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국적 기업에 부과하는 디지털세(稅)가 전통적 동맹국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디지털세란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대형 IT 기업 대상의 세금이다. 이들은 해외에 생산시설을 짓거나 현지 인력을 대거 고용하지 않고도 인터넷망을 이용해 쉽게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 돈을 번다.
이러다 보니 법인체와 자산이 있는 지역을 근거로 해 기업에 세금을 물리는 현행 과세 체계에서 IT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본다는 게 EU의 주장이다.
따라서 매출이 발생하는 지역, 또는 서비스 이용자의 거주지를 기반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EU는 요구하고 있다.
NYT는 "EU는 이런 과세 체계 때문에 IT 기업들이 다른 다국적 기업들의 실효세율의 절반도 안 되는 세금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디지털세는 법인세와 별도로 부과하며, 전통적으로 기업의 이익에 과세한 것과 달리 매출을 기준으로 세금을 물린다는 점에서도 파격적이다.
디지털세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추진해온 일련의 보호무역주의 조치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짙다.
미국은 이미 EU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유럽 항공사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문제로 삼아 EU 공산품과 농산물에 고율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유럽산 자동차 수입을 미국의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완성차와 차 부품에 고율관세를 물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U로서는 디지털세가 이 같은 미국의 파상공세에 대한 카운터펀치인 셈이다.
가장 먼저 선수를 친 것은 프랑스다. 프랑스 상원은 11일 연매출이 7억5천만 유로(약 9천900억원) 이상이면서 프랑스 내 매출이 2천500만 유로(약 330억원) 이상인 글로벌 IT 기업을 상대로 프랑스 매출의 3%를 디지털세로 과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 등이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안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주 내에 서명하면 발효된다.
영국도 뒤따랐다. 영국 재무부는 11일 글로벌 연매출이 5억 파운드(약 7천390억원) 이상이고, 영국 내 매출이 2천500만 파운드(약 369억원) 이상인 대형 IT 기업에 매출의 2%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영국 재무부는 내년 4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EU 차원에서도 디지털세가 검토되고 있다.
미국은 펄쩍 뛰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프랑스가 과세 움직임을 보이자 10일 프랑스의 디지털세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조사에 나선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프랑스의 디지털세가 "미국 기업들을 불공정하게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NYT는 "디지털 매출 확보가 전통적인 동맹들을 서로 갈등 상태로 내몰고 있다"며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다국간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증세와 관세의 폭포가 쏟아져 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EU는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재 등을 통해 디지털 수익에 대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과세 체계를 마련하려 노력해왔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도 각종 국제 포럼에서 전 세계 재무장관들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해왔다. 4월 열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회의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에 합의안이 마련되면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포기하라고 압박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은 매출이 아닌 이익에 과세할 것과 특정 산업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지 말 것도 요구하고 있다.
NYT는 디지털세가 2000년 이후 선진국 간에 전개돼온 법인세 인하 경쟁의 움직임을 갑자기 뒤집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인세 인하는 강력한 기업 유인책의 하나다.
OECD에 따르면 회원국들의 평균 법인세는 2000년 32.2%에서 2018년 23.7%로 8.5%포인트 하락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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