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찾기 힘든 강경발언…日 부당성 조목조목 비판
강경대응 원칙 재확인…日기업 타격 부각하며 '외교 해결' 거듭 촉구
국제무대 여론전도 염두…기업지원·초당협력 강조하며 내부단결 모색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를 두고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확실한 대일(對日)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모두발언에 나선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 조치를 겨냥해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동시에 이번 조치를 두고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다른 나라를 향해 '경고'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했다는 점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강경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는 일본의 '억지 주장'에 단호하게 맞서지 않을 경우 오히려 경제보복을 장기화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정면 대응을 통해 잘잘못을 확실히 가려내고 이를 통해 일본을 빨리 외교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도록 압박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경제보복 논란을 거치며 일본이 보였던 행동이나 논리를 차례로 열거하며 조목조목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원만한 외교적 해결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 우리 방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도 없고 함께 논의해보자는 취지였으나 일본은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배상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에게 한일 기업이 출연해 위자료를 준다'는 외교부의 제안을 거론한 것으로, 일본은 이런 제안을 받고도 아예 논의를 거부했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지적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는 '일본이 원만한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외면한 채 다른 의도를 갖고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이라는 의구심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일본의 규제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다. 일본의 의도가 거기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본 고위층이 '전략물자 밀반출 및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거론한 것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주장은)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동참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대해 불신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여기에는 일본의 이번 조치의 파장이 단순히 한국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며 국제사회의 동북아 안보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을 향해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는 전방위 외교전을 펴고 있는 시점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이번 사태가 국제무대에서도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환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이 과정에서 한국이 아닌 일본의 수출통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면서 소모적 논쟁 대신 한국 정부가 제안한 '국제기구 검증'을 받자고 촉구했다.
제 3자 국제기구의 객관적 검증을 통해 한국이 아닌 일본이 수출통제에서 허술했음을 증명받겠다는 것으로, 그만큼 일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자신감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자신감은 이번 조치가 가져올 경제적 피해가 한국보다 일본에 더 클 것이라는 '경고'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우선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오히려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며 일본 시장에 가해질 충격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점을 거듭 상기시켰다.
이는 일본 기업의 타격을 고려하더라도 양국이 '치킨게임'을 멈춰야 한다는 대(對) 일본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국내 기업과 정치권을 향해서도 내부 단결을 통해 이번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양국의 대치가 일촉즉발로 치닫는 엄중한 시점인 만큼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우선 기업들을 향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주도하는 민관 상시소통 협의체를 통해 기업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우린 어떤 경우에도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도 자신감을 갖고 기업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힘을 모아달라"라고 당부했다.
동시에 "숱한 고비와 도전을 이겨온 건 언제나 국민의 힘이었다"고 한 것 역시 국민들의 단결 속에 이번 사태를 극복할 동력을 살려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정치권을 향해서도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이번 사태를 "전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규정한 바 있으며, 그런 만큼 이번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는 정치 논리를 초월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hys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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