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압박에 '시간과 여유' 들며 또 속도조절론…한미훈련도 원칙론적 입장
실무협상 앞서 北에 '입장 정리' 시간 주며 실질적 성과견인 포석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북한이 북미 실무협상 재개와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연계, 대미 압박에 나선 가운데 미국 측이 또다시 속도조절론을 꺼내 들었다.
북한의 압박에 맞대응을 자제하고 협상 재개를 위한 긍정적인 신호를 계속 발신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북한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문제 삼은 한미연합 훈련에 대해서도 일단은 원칙론적 기조를 보였다.
북미 정상의 지난달 말 판문점 회동의 결과물인 실무협상의 '재개 시간표'가 다가오는 상황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 직후 '2∼3주 내' 실무협상 재개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주가 판문점 회동 뒤 3주째가 되는 시점으로, 미국은 북측에 실무협상을 이번 주에 열자고 제의해둔 상태로 알려져 있다. 양측간 기 싸움 양상이 이어지면서 현재로선 협상 재개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는 듯한 흐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거듭 내세워 북한과 '엄청난 진전을 이뤄냈다", "결국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낙관론을 견지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본질적인 게 아니다"라며 서두를 게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제재가 전부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고대한다면서도 '시간과 여유'를 언급했다. 북한인지 스티븐 비건 협상팀인지를 가리킨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그들에게 '시간과 여유'(time and space)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 지명자는 이날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미연합훈련이 북한의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원칙론을 견지했다. 국방부 대변인도 "한미가 가을 연합훈련 프로그램 실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측의 이날 언급을 두고 실무협상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북한이 최종 입장을 정리할 시간을 주며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미국 측은 최근 '동결'을 입구로 하고 '대량파괴 무기(WMD)의 완전한 제거'를 종착지로 하는 로드맵을 재확인한 바 있다. 미국 측은 이번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의 최종상태(end state)의 개념에 대한 북미 간 합의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또한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s)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며 북한이 요구해온 체제보장 문제에 대한 전향적 메시지도 발신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을 향해 "처음에 없었던 아이디어들을 갖고 테이블로 오기를 희망한다"면서 "우리도 약간 더 창의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미국도 상응 조치 면에서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북한도 그만큼 실무협상 테이블에 나설 때 '빈손'이 아닌 비핵화 조치에 대한 '결심'을 들고나오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스티븐 비건-김혁철 라인'간 실무협상 당시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진전을 얻지 못해 결국 본 담판이 '노딜'로 끝난 데 대한 학습효과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
속도조절론은 미국 국내적으로는 '성과 부진론'을 차단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실무협상 테이블 복귀가 늦어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외교 치적으로 부각하려는 '판문점 회동' 성과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고, 미 조야 내 회의론도 고조될 수 있어서다.
실제 이날 미 언론들은 북측의 입장 발표와 관련, 외무성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약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미국과 한 공약에 남아있어야 할 명분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 것에 주목하며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 발사 유예)' 중단을 경고한 것이라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양측 모두 정상간에 직접 합의한 실무협상 재개의 '판'을 어떻게든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북측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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