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 추산 9천명 노인 참여…행정장관 직선제 등 요구
21일·27일 등 릴레이 주말시위 예고에 경찰 "충돌 우려"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 "단일사건 처리로 범죄인 인도해달라"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천 명의 노인이 거리로 나와 "송환법 완전 철폐"의 목소리를 높였다.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주최 측 추산 9천여 명(경찰 추산 1천500명)의 노인들이 홍콩 도심인 센트럴에서 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까지 행진하면서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행렬의 맨 앞에 '젊은이들을 지지한다. 홍콩을 지키자'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했다.
대부분 흰 옷을 입은 시위 참여자들은 '제도적 폭력에 반대한다', '우리는 직선제를 원한다'라고 적힌 검은색 플래카드도 들고 있었다.
홍콩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은 1천200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하는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2014년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의 주역인 추이우밍(朱耀明·75) 목사는 "이번 행진은 홍콩의 사회운동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라며 "모든 연령대의 그룹이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진정한 대중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지난달 14일 수천 명의 홍콩 어머니들이 송환법 반대 촛불 집회를 여는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휠체어에 탄 채 실버 시위에 참여한 로슈란(82) 씨는 "대중을 위해 싸우는 홍콩 젊은이들을 지지한다"며 "무능한 캐리 람 행정장관은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21일 코즈웨이베이의 빅토리아공원에서 센트럴에 있는 대법원까지 송환법에 반대하는 행진을 할 계획이다.
민간인권전선은 지난달 9일 103만 명, 16일 2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시위를 주도한 단체다. 21일 시위도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홍콩 정부가 법관이 주도하는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해 최근 시위 진압에서 경찰의 무차별 폭력 행사를 조사해야 한다면서, 이를 부각하기 위해 행진의 최종 목적지를 대법원으로 잡았다고 밝혔다.
최근 송환법 시위 사태가 격화하자 친중파 진영에서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으나, 캐리 람 장관은 "내가 행정장관으로 있는 한 안 된다"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야단체 등은 21일 시위에 이어 27일 카오룽 반도의 훙함 지역에서 시위를 벌이고 이어 몽콕, 정관오 등 홍콩의 다양한 지역에서 주말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당초 공공안전 등을 이유로 21일 시위에 반대했다가 이를 허가한 홍콩 경찰은 27일 훙함 시위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훙함 지역은 중국 본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어서 시위대와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콩에서 50인 이상이 참여하는 공공 집회를 열기 위해서는 집회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집회 허가 때 경찰이 요구한 조건을 따라야 한다.
지난 14일 사틴 지역에서 벌어진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는 경찰과 시위대의 극렬한 충돌로 인해 시위 참여자, 경찰, 현장 취재 기자 등 28명이 다쳤다.
한편 송환법안 추진의 계기가 된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족이 지난달 말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사건의 개별적인 처리를 요구했다고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지난해 한 홍콩인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했으나, 홍콩과 대만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이를 송환하지 못하자 홍콩 정부는 이를 빌미로 삼아 범죄인 인도 법안을 추진했다.
법안은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대만, 중국 등에도 사안별로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으나,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피해자 유족은 이 서한에서 캐리 람 장관이 법원의 결정이나 행정명령 등 개별사건 처리를 통해 살해범을 대만으로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야당은 물론 친중파 진영에서도 최근 시위 사태로 송환법안 통과가 불가능해진 만큼 이번 단일사건에 대해 범죄인을 인도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캐리 람 장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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