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턴우즈 75주년…일방주의 역풍 직면한 IMF·세계은행

입력 2019-07-18 16:13  

브레턴우즈 75주년…일방주의 역풍 직면한 IMF·세계은행
회원국 44개에서 185개로…다자주의·약탈도구 '명과 암'
적응 거듭하며 글로벌 금융안정·경제개발 쌍둥이 축으로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글로벌 다자주의 경제질서의 두 축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탄생 기반이 된 브레턴우즈 협정이 75주년을 맞이했다.
IMF와 WB는 1944년 7월 1일부터 22일까지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턴우즈에서 44개국 대표단이 모여 체결한 다자주의 협정에 의해 탄생했다.
각국 협상단은 파멸적인 1, 2차 세계대전에 전율하며 머리를 맞댔다. 당시는 보호주의, 금본위제의 폐해, 경쟁적 통화가치 절하 속에 망가진 국제통상이 대공황, 파시즘, 세계대전을 부른 뒤였다.
결국 참가국들은 개별국가와 글로벌 경제의 이익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계돼있는지에 대한,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이치에 의견을 함께했다.
이들 국가는 경제개발과 금융안정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여건이라는 점을 전제로 삼아 WB와 IMF를 출범시켰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다시는 전쟁의 공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고 국제기구들의 집합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립턴 IMF 총재 대행은 브레턴우즈 체제 75주년 기념 연설에서 여왕의 이 발언을 다자주의 운동의 효시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브레턴우즈 체제를 바꾸는 콘퍼런스는 다시 열리지 않았으나 IMF와 WB는 세계 경제의 변화에 발맞춰 진화를 거듭해왔다.
IMF는 고정환율제가 대거 무너진 뒤 금융위기에 몰린 국가들에 구제자금을 빌려주는 역할을 맡아 새로운 기구로 거듭났다.
회원국은 출범 당시 44개국에서 세계 전체 국가에 가까운 189개로 늘었다.
주된 역할은 세계 각국의 경제나 금융 상황을 추적해 정책입안자들이 금융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도록 돕는 것이다.
금융위기에 몰린 신흥국이나 저소득 국가를 구제하고 산업화한 국가들이 국제규범을 조정하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IMF는 1980년대, 1990년대 금융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구제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국민들이 심각한 고통을 느낄 정도의 경제구조 개혁을 요구하면서 많은 반발에 부닥쳤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경제위기를 겪은 국가들에서는 IMF가 선진국 자본의 신흥국 약탈을 용이하게 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거센 비판도 받았다.
IMF는 201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금융위기에도 채권자 가운데 하나로 가세해 채무국에 뼈아픈 구조개혁을 압박했다.
그 여파로 유로존 지도자들은 향후 구제금융이 필요할 때 더는 IMF를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WB도 회원국을 189개까지 늘리고 빈곤퇴치,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저리 대출, 개발정책 조언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WB는 민간 투자나 중국 및 여타 개발은행들의 투자 확대로 투자 부문에서는 그 역할이 줄었다.
데이비드 맬패스 WB 총재는 브레턴우즈 75주년을 맞이해 배포한 에세이에서 "2018년 세계 빈곤율은 8.6%로 역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여전히 과제가 많다"고 현황을 소개했다.
맬패스 총재는 "WB는 어느 때보다 많은 수단과 접근법을 보유하고 있다"며 "경제성장을 이끌고 소득을 늘리며 극빈층과 취약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브레턴우즈 협정을 통해 출범한 IMF와 WB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글로벌 다자주의의 수호자로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역할을 묵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통상을 비롯한 각종 현안에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때면 일방주의 성향, 미국의 이익과 무관한 사안에는 고립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WB는 단순한 경제개발 지원을 넘어 시대의 요구에 맞춰 난민사태를 비롯한 이주 문제에 대한 관리, 기후변화 대처 등과 같은 이른바 '지구촌 공공재'로 눈을 돌리고 있는 만큼 행보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미국 재무부 차관 출신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추천으로 WB에 입성한 맬패스 총재가 조직의 핵심 의제를 단순한 국가별 경제개발 프로그램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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