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사건' 김기삼 생애 그린 長詩 '칼바람 몰아치는 벼랑에서'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6·25 한국전쟁에서 소대장으로 목숨 걸고 북한군·중공군과 싸웠지만,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공안 당국에 끌려가 간첩의 멍에를 썼다.
신군부 시절이던 1980년 12월 8일. 공공기관 기술직이던 김기삼의 인생은 이렇게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기삼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월북한 사촌형을 만난 뒤 군사시설 등 국가시설에서 검침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다'는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발표되고, 이후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아 8년여간 복역한다.
하지만 2009년 과거사위가 재심을 권고하고 법원은 결국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출소한 지 29년 만에 결백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김기삼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시인 문창후(필명)가 쓴 '칼바람 몰아치는 벼랑에서'(지식산업사 펴냄)는 이처럼 곡절 많고 가련한 김기삼 일대기를 7천행이 넘는 장시(長詩)에 담아냈다.
일반적인 평전 형식으로 쓰는 대신 구슬픈 남도 판소리 운율로 김기삼의 한 맺힌 삶을 노래해 슬픔을 더한다.
이제 아흔 노인이 돼 와병 중인 김기삼과 아들 동수가 곡절 많은 사연을 일일이 구술하고, 이를 취재한 문창후가 서사시처럼 옮겨냈다.
특히 평범한 한 가족의 꿈이 산산이 깨진 배후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이 있었다는 점을 고발한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이었던 김기삼이 해방 이후 학업 대신 밥과 옷을 구하러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전쟁까지 겪고도 강한 생존력을 보인 청년 시절부터, 어느 날 '간첩' 누명을 쓰고 "이 나라에서 평생 사람으로 살 수 없었"던 비극을 길고 긴 시로 목놓아 노래한다.
그러면서 당시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눈물의 김기삼'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280쪽. 1만5천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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