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계기 '유럽에도 많다' 인식 확산
'응석많은 일본 특유 현상 아니고 개인자율 존중 서양에도 많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일본어 '히키코모리'가 유럽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 히키코모리는 장기간 집에 틀어박혀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문제를 다룬 일본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유럽에도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2일 전했다.
프랑스 파리 교외 몽루주에서 엄마와 사는 알렉시 프라이(20)는 집에 틀어 박혀 산 경험이 있다. 원래 다른 사람과 잘 사귀지 못하는 성격인데 주위에서 차별을 받은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 출신인 그는 "나는 백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피부색이 짙을수록 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프랑스인이지만 학교에서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람의 사망을 계기로 2년전부터 외출을 하지 않게 됐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져 질문을 받는게 싫어졌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무서웠다. 낮과 밤이 뒤바뀌었다. 스스로도 "보통의 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뭔가를 해볼 의욕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일본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듣고 인터넷을 찾아본 끌에 깜짝 놀랐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다룬 것이어서 "나만 이상한게 아니다"라는 생각에 고민이 덜해졌다. 작년말 엄마의 조언대로 히키코모리를 30년 가까이 진료해온 파리의 정신과의사를 찾았다. 의사에게 경험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복용한 끝에 서서히 외출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에는 4년만에 고향 마르티니크를 방문했다.
좋아하는 게임 소프트웨어(SW) 개발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다. 그는 "지난 2년간 집에 틀어박혀 지냈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해결책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부모들도 있다. 파리 교외 세블에서 24살난 아들 주르와 둘이 사는 전문학교 교원 카트리느 쟈콥(57)은 아들이 외출을 하지 않은 지 9개월째다.
집에서도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카트리느가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어려서부터 집단행동을 싫어해 초등학교 4학년께부터 학교를 자주 결석했다. 중학교에서는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머니의 통장에서 현금을 자주 인출했다. 대학에서도 수업에 빠지기 일쑤여서 낙제를 거듭하다 결국 퇴학당했다. 현재 외출은 한달에 한번 정도. 파리에서 어린 시절 친구와 만날 때 뿐이다. 그나마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피해 호출택시를 이용한다.
카트리느는 "억지로 끌고 나갈 수도 없고 '나가 버리라'고 최후통첩을 할 수도 없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 놓았다.
알렉시 프라이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 마리잔느 게주는 집이나 방에 틀어 박혀 생활하는 히키코모리는 '핀란드, 미국, 나이지리아, 오만, 남미에서도 사례가 보고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는 1953년에 출판된 의학서적에 "자택 틀어박힘'이라는 명칭으로 이미 보고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에게 상담하러 오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다.
인접 국가인 스페인에서도 집에 틀어 박혀 사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정신과 의사인 호세미겔 마르틴(54)은 2014년 히키코모리의 실태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나 직장에서 집단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한게 계기가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후루하시 다다키(古橋忠晃) 나고야(名古屋)대학 종합보건체육과학센터 교수는 "자식이 집에 처박혀 있는 건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기 쉬운 일본 특유의 현상으로 여겨지는 사례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부모가 이민 등으로 사정으로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사례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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