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를 뒤로 물리고 '나'의 역사를 찾다

입력 2019-07-23 09:32  

'우리'의 역사를 뒤로 물리고 '나'의 역사를 찾다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나'는 누구이며 '세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역사학과 교수)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다.
그의 인류 3부작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이 가운데 '세상'의 의미에 주안점을 뒀다. 여기서 '세상'이란 삶의 공동체인 '우리'다.
하라리가 3부작을 통해 던진 질문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다. 세상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나'는 누구일까? '나'의 역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라리는 '우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전에 역사 속 '나'의 의미부터 파고들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우리'에 앞서 '나'의 의미를 탐색한 책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군인들이 왕과 국가의 정치권력에 맞서 어떻게 자신을 역사적 주인공으로 세우려 했는지 살핀 것. 그의 인류 3부작은 이를 사상적 배경으로 해 출간됐다. 하라리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인 이 선행 연구는 2004년에 원서로 나왔다.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하라리가 주목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이었다. 그들의 회고록은 17세기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의 역사(history)와 개인사(lifestory) 사이의 긴장 관계를 첨예하게 드러냈다.
왕과 민족을 핵심으로 '역사 만들기'를 추진한 국가에 저항한 독립적 개인의 정치적 급진성을 선명하게 보여준 것. 연구 대상으로 삼은 군인 회고록은 1450년에서 1600년 사이에 34명이 쓴 문헌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에게 역사는 명예의 전당이나 진배없었다.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영웅적인 행위, 즉 무훈이었다. 용맹한 행동이야말로 기념할 가치가 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전쟁은 왕과 국익을 위한 추상적 투쟁이라기보다 실체가 있는 욕망과 명예를 위해 벌이는 한판 대결이었다. 역사를 독점한 왕과 국가에 개인이 맞섰다고 하겠다.
이처럼 명예의 동등함 원칙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명예로운 행동을 한 사람, 즉 개인은 누구나 동등한 처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급 군인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귀족이나 왕과 동등한 위치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라리는 그 시대의 군인회고록이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을 역사와 개인사의 동일시로 고찰한다. 왕조-민족의 위대한 이야기는 개인사에서 분리돼 나간 '우리'의 역사였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 회고록의 저자들은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규정하면서도 그 속에 매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제는 개인사가 역사보다 우위를 점하려 한다"고 덧붙인다. 역사는 개인사를 기반으로 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나'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음을 본 하라리는 이 책이 출간된 지 7년 만에 역저 '사피엔스'를 펴내 '우리'의 역사를 심도 있게 살펴나간다.
중세 전문가인 박용진 서울대 교수(인문학연구원)는 책 해제에서 "20세기에 들어서 전사나 지휘관 집단이 아니라 대체로 하급 군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면서 "르네상스 이후 근대국가 체제 아래에서 기억할 만한 것을 결정하는 기준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한다.
김영사. 김승욱 옮김. 516쪽. 2만2천원.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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