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격화된 한일갈등이 이번 주 중대 변곡점을 맞고 있다. 23~24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14개 안건 중 11번째로 다뤄진다. 24일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 대상국)에서 배제하는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 수렴 시한이다. 이와 병행해 참의원 선거에서 자체 기준으로는 승리한 일본 정부가 한국이 먼저 답을 가져오라는 일방적인 태도를 고집하며 추가 보복 조치를 예고해 사태는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정부는 WTO 이사회에 능력과 경험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을 대표로 파견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 조치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미국 블룸버그 통신 등 세계 유수 언론의 기사가 잇따라 우리 정부에 힘이 되고 있다. 국제기구를 통한 공식적인 노력 못지않게 각국 언론과 시민 사회를 상대로 한 여론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사설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신랄히 비판했다. 통신은 수출규제의 실제 목적은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보복하는 데 있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치적인 분쟁을 해결하려고 통상조치를 오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총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웃 나라를 상대로 한 어리석은 무역전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적으로 근시안적이라며 일본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는 자해 행위라고 경고했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유무역의 가치 수호자를 자처하며 혜택을 누려온 일본이 위선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심지어 일부 일본 매체도 자국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와 자유무역 왜곡 조치는 이미 지적돼 왔지만 권위 있는 매체들에 의해 신랄히 비판받는 현실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국제적으로도 설득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력 매체들의 잇따른 비판 보도는 한일갈등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우리 정부에는 의미 있는 우군이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물론 언론 등을 상대로 한 여론전에 더욱 신경 써 일본 측 논리의 허구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일본 정부도 대대적으로 국제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외무성과 경제산업성이 22일 자국 주재 외국 대사관 직원들을 모아 놓고 '보복이 아닌 수출관리 체제 재검토'라는 자체 입장을 강변하는 설명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 한국 대사관은 제외됐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대신 같은 날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이례적으로 열었지만 수출규제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여전히 피했다. 일본 측은 사실관계 설명 자리라고 밝히면서도 당국자의 정확한 발언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녹취와 사진촬영은 불허하는 깔끔하지 못한 태도도 보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23~24일 방한하고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3~27일 방미 활동을 펼친다. 나라 안팎으로 움직임이 분주하다. 정부 당국, 민간 분야 할 것 없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전방위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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