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의 조사…석유·화학, 차 부품, 기계 등 영향
전략물자 해당 여부도 몰라…사태 장기화 땐 직격탄
(부산=연합뉴스) 김상현 기자 = #1 일본 업체와 협업해 윤활유를 만드는 A사는 윤활유 첨가제와 기유(베이스유)를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협업 관계 일본 업체가 첨가제 등을 일본제품만 사용할 것을 시방서에 명시하고 있어 수출규제가 확대되면 어려움이 불가피해진다. A사는 첨가제나 기유 수입이 어려워지면 협력 일본 업체에 시방서 변경을 요구할 예정이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2 접착제와 젤라틴을 제조하는 B사는 20여개 원료 품목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제품 개발 당시 일본과 기술제휴를 맺어 일본산 원재료 의존도가 높다. B사는 급한 김에 6개월분 이상 원재료 재고라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3 일본산 원자재로 화학제품을 만드는 C사는 이 원자재가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 품목에 포함되는지 몰라 일본 거래처에 확인 공문을 보낸 상태다. 내년 3월까지는 재고가 있지만, 사태가 길어질 경우 재고 추가 확보나 대체재 물색에 나서야 한다.
부산지역 중소기업들이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 움직임에 대비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기업별로 재고 확보, 대체재 마련, 우회 수입경로 타진, 전략물자 해당 여부 확인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지만,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지역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일본 수출규제 확대 움직임에 따른 긴급 모니터링을 하고 25일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기계·부품 등 부산지역 주력 제조업종 대부분이 직·간접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대체로 일본 수입 품목이 전략물자에 해당하는지를 잘 알고 있고 별도 대응 조직도 운영하고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수입품목이 규제 대상인지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 중소업체는 일본 거래처 등에 직접 확인을 의뢰하고 있으나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산상의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안보우호국) 제외로 수출규제를 받는 전략물자 명단이라도 정확히 알려줬으면 한다"며 "일본 경제보복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해 지역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대책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업체는 일본 수입 원자재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다른 업체는 일본 거래 기업에 전략물자 여부 확인을 요청했으나 현재로서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부정확한 답변만 들었다.
지역 기업들은 나름대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화학용품을 생산하는 한 업체는 일본 수출규제 영향을 받은 국내 대기업이 납품 물량을 줄이면서 이달부터 납품량이 빠르게 줄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원료첨가제를 수입하는 또 다른 기업과 기계 부품을 제조하는 기업 등도 재고 확보에 노력하고 있지만, 응급처방일 뿐 사태가 장기화하면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부산상의 관계자는 "일본의 1차 수출규제는 반도체 산업에 국한돼 부산지역 제조업체들의 직접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추가 수출규제가 이뤄지면 지역 주력 제조업종 대부분이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부산상의는 부산시와 함께 일본 수출규제 피해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기업 피해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실질적인 대비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josep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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