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 강요엔 부정적 의견 많아…"참여는 개인의 판단"
"일본차 주유 거부는 불매운동 아니라 소비자 권리 침해"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에서 비롯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대학가에서는 불매운동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5일 서울 주요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불매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국내 소상공인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 상품을 사거나 일본으로 여행 간다고 해서 '매국노'로 몰거나 일본인 개인을 비하하는 것은 멈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 "일본에 본때 보여줘야" vs "한국 소상공인도 힘들어"
한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본 정부가 한국인을 쉽게 보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며 '일본 정부 편을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매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추천 수가 200개를 넘으며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처럼 대부분의 학생은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이 부당하다며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학생은 올해 3월 여름 휴가로 예약한 일본 오키나와 항공편, 호텔 숙박을 모두 환불한 상태라면서 대한민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반일 감정과 불매운동은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글쓴이는 "불매운동은 반일감정과 다른 이성적 움직임"이라며 "불매는 반일감정 표현이 아닌 상대의 무력 사용에 대한 방어"라는 논리를 폈다.
일본 기업이나 정부가 한국 불매 운동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것에도 분노를 표출했다.
한 학생은 "불매운동 할 생각 없었는데 일본 쪽에서 한국 불매 운동 오래 못 간다고 하는 것이 능욕 같아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했다.
불매 운동이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이 도움이 안 되고 한국 경제 상황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누리꾼은 "편의점에서 손님들이 아사히 맥주를 왜 파냐고 욕해서 팔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일본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우리가 일본과 영원히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일본보다 강해졌을 때를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며 "불매 운동으로 더는 한일 관계를 악화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대학생 김모(26)씨는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불매 운동의 대상이 결국 우리 국민들이 판매하고 운영하는 것"이라며 "일본 제품을 판다고 해서 친일파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박모(21) 씨는 "불매 운동이 장기화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는 피해도 있을 텐데 (사람들이)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며 "스마트폰에 일본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데 스마트폰도 불매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 "불매 참여 여부는 개인 자유…강요 말아야"
불매 운동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개인의 참여를 넘어 불매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공감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6) 씨는 "불매는 개인 판단의 문제"라며 "불매를 안 하는 사람보다 일본 제품을 사용한다고 테러하는 사람들이 더 꼴불견"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일본 여행 가는 매국노 팔로우하는 계정'이 만들어져 일본에 여행 간 한국인을 공개 망신 주는 경우도 발생했다.
한 대학 커뮤니티 이용자는 '불매 강요하지 마라. 내 돈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인가'라는 글을 올려 불만을 나타냈다.
대학원생 이모(27) 씨는 "친구들과 세계과자점에 갔다가 일본 과자를 사지 말라는 친구가 사려는 친구에게 '일본 것이니 사지 말자'고 이야기했다가 다툼이 벌어졌다"라고도 전했다.
대학생 김모(25) 씨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일본 불매 운동 참여해야지', '왜 일본 여행 취소 안 해'처럼 일본 불매 운동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에서 일본인 연주자가 나오자 한 관객이 일본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외쳤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일본인 개인에 대한 비판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불매운동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거나 일본인에 대한 차별·인권침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차 수리·주유를 거부하는 것은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불매 운동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선을 넘는 불매 운동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일본 내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확산하고, 혐한 정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 교수는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불매운동이 선을 넘는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대학가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타인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불매운동은 조심해야 한다"면서 "일본차를 몰고 다닌다고 테러를 하거나 타인의 선택을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청년 세대들이 불매운동 로고와 슬로건을 만들고 디자인적 요소를 넣어 재미를 강조하고 있다"며 "기존의 규범화된 불매 운동을 넘어 진화하고 있다. 불매운동에 대한 반감도 의견을 표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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