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내년에 어느 항목에서 어느 만큼의 세금을 걷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세제 개편안이 나왔다.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다소 늘리고, 경기 부진에 허덕이는 기업에 대한 세 부담은 약간 줄여주는 내용으로 마련됐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과감한 지원책이 없어 아쉽지만 나라 살림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 세수 규모를 늘려잡지 않았다는 점은 국민의 어려운 사정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세제 혜택은 주로 기업들의 고용과 투자를 유도하는 쪽에 맞춰졌다. 내년부터 1년간 대기업의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을 1%에서 2%로 올리고, 중견기업은 3%이던 것을 5%로, 중소기업은 7%에서 10%로 높여준다. 자산 취득 초기에 감가상각을 크게 해 세금을 덜 내도록 하는 가속상각 특례 적용기한도 내년 6월 말까지로 6개월 연장한다. 내년부터 고용·산업 위기 지역 내 창업기업에 대해서는 기존 5년간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에 더해 2년간 50%를 추가 감면해주며, 규제자유특구의 투자세액공제율도 중소기업은 3%에서 5%로, 중견기업은 1∼2%에서 3%로 올려준다. 이런 조치로 경감받는 법인세는 5년간 5천463억원에 달한다.
고소득자 등은 세금부담이 늘어난다. 부담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밀한 정책으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정책 기조가 반영됐다. 근로소득공제 한도를 최대 2천만원으로 설정해 연간 총급여 3억6천250만원 초과 근로자는 소득세를 더 내도록 했다. 5억원 급여 근로자는 110만원, 10억원 근로자는 535만5천원 더 내는 것으로 추산된다. 법인의 임원이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금도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퇴직소득이 아닌 근로소득으로 계산해 세금을 더 내도록 했다. 또 소형주택 임대사업자의 감면 혜택과 9억원 이상 상가주택 거래 시 양도소득 과세특례도 줄인다. 이런 식으로 해서 향후 5년간 고소득층 세 부담은 3천773억원 늘어난다.
최근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 기관과 민간연구소 등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는 등 경기가 매우 안 좋아 획기적인 세제 지원책이 나오지 않느냐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대신에 세수가 소폭이나마 줄어드는 구조로 짠 것만으로도 경기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다. 재정 규모가 늘 커지다 보니 세제개편을 통한 이듬해 세수 추계는 늘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개편안을 따져보면 줄어들게 돼 있다. 2년 연속 세수감소가 나타나도록 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엄중한 경기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한 지원책 등은 이번 개편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아직 실무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세제 개편안은 이듬해의 세금징수를 위해 거의 1년 전부터 항목별 기준과 현황을 분석해 적절한 조정을 하게 된다. 다시 손을 대지 않으면 수년 이상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장기적 성격을 갖는다. 요즘처럼 외부요인이 급변하는 상황에는 함부로 세제를 고치기가 어렵다. 시장안정을 위해서는 그대로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한일 무역갈등과 같은 굵직한 현안은 그것대로 예의주시하고, 미세한 부분도 꼼꼼히 살펴 조세정의를 실현해 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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