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대상 샅바싸움 "공산품만" vs "농산물도 포함해야"
자동차 관세·항공사 불법 보조금 분쟁 등 곳곳에 '지뢰'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관세철폐를 위한 무역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양측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협상이 타결되지 못한 가운데 미국과 EU 간 협상도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전 세계에 무역전쟁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융커 합의' 1주년을 맞이한 지난 25일 EU 집행위는 양측에서 공동 참여한 워킹그룹의 활동 등 지난 1년간 상황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내놓았다.
집행위 측은 작년 트럼프-융커 합의 이후 EU가 합의 내용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보고서를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을 보면 지난 1년간 진척상황이 당초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먼저 1년 전 트럼프 대통령과 융커 위원장은 합의문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제로(0) 관세'와 '제로(0) 비(非)관세 장벽'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은 지난 4월에야 집행위에 공산품 무역장벽을 줄이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도록 협상 권한을 부여했다.
더군다나 양측간 협상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주 유럽의회 보고에서 미국이 농산물도 협상에 포함해야만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고 주장하고 있어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농산물을 협상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우리에겐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했다.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비관세 무역 장벽 문제도 아직 손에 잡히는 진전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양측은 콩과 서비스를 비롯해 화학물질, 의약품, 의료용품 분야의 무역장벽을 줄이기 위한 기술적 협의를 해왔고, 오는 8월께 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EU 집행위는 특히 의료기기와 사이버안보, 의약품 분야 규제철폐에 관한 협력에선 매우 좋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꼽을 만한 진전은 EU의 미국산 LNG와 콩 수입이다.
트럼프-융커 합의 이후 1년간 EU의 미국산 LNG 수입은 3배로 늘어 역대 최대 규모인 14억 규빅미터를 기록했다.
집행위에 따르면 3월 한 달 수입액만 3억 유로(3천900억 원, 1유로 1천300원 환산)에 달했다.
EU의 미국산 콩 수입도 두 배로 늘었다고 집행위는 밝혔다.
트럼프와 융커가 합의했던 세계무역기구(WTO) 개혁과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대응도 양측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유럽의회 보고에서 "WTO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운 지경"이라고 언급했다.
말스트롬은 "WTO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진 최고의 시스템"이라면서 "그것이 없으면 총체적 혼돈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WTO 개혁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어떤 경우엔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EU와 미국, 일본은 회원국들이 WTO의 요구 조건을 투명하게 이행하도록 하자는 공동제안을 내놓고 정기적으로 만나고는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WTO 항소기구 위원 임명을 차단하고 있어 WTO 개혁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년 7월 융커 위원장은 미국이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고율 관세 부과를 강행한 뒤 전격적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더욱이 당시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고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융커 위원장은 합의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 관세문제)에 대해 계속 협력하는 동안에 어느 일방이 협상을 중단하지 않으면 이 합의의 정신과 어긋나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여전히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또 유럽산 자동차에 대해 더 제한적인 조처를 하겠다는 위협은 어느 때보다도 중대한 국면에 이르렀다.
미국에 대한 EU의 반발 강도도 더 커져 무역을 둘러싼 양측의 긴장감은 계속 풍선처럼 부풀고 있다.
EU는 최근 미국이 EU산 자동차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산 물품에 대해 350억 유로 상당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맞불을 놓겠다며 더 강력한 경고음을 미국에 보냈다.
이는 당초 EU가 지난 1월 밝혔던 대미 보복관세 규모의 2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측간 해묵은 갈등인 미국 보잉사와 EU의 에어버스 불법 보조금 문제는 양측간 무역전쟁의 또다른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양측 모두 이 문제가 원만한 합의 없이 종결될 경우 더 강력한 제재에 나설 태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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