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8월 2일 탈퇴 예정…러시아 "'맞탈퇴' 입장 변화 없다"
러 차관 "지상 발사 핵미사일 유럽 배치되면 美 근처에서 상응 조처 할 수도"
(워싱턴·서울=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하채림 기자 = 미국이 1987년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를 예고한 시한(이달 2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러시아도 미국의 조치에 똑같이 대응하겠다고 맞서는 상황이라 조약의 폐기는 물론 향후 또 다른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 국방부 칼러 글리슨 대변인은 "러시아는 의무사항의 검증 가능한 준수로 되돌아가려는 어떤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조약이 다음 달 2일 종료되면 미국은 더는 INF상 금지 조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탈퇴를 기정사실로 했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 역시 미국에 상응 조처를 한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태도로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달 30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INF 조약 종료와 관련한 정책을 뒤집기 위해 수일 내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러시아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INF 탈퇴에 관한) 단도직입적인 최후통첩을 받은 이래 정책에 어떤 변화도 없다"고 강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유럽 각국은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러시아는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랴브코프 차관은 "우리는 재래식 미사일 배치 역시 (핵미사일과) 동일하게 안정을 해치는 행위로 본다. 이는 상호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31일에도 랴브코프 차관은 INF에서 금지한 지상 발사 핵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될 경우 맞대응할 것인지 묻자 '미국에 더 가까운 곳에 유사한 미사일을 배치할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INF 조약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이에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됐다.
양국은 조약 발효 후 3년 내로 사정거리 500~5500km의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하고,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천692기를 없앴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유럽 미사일방어 체계를 구축하면서 양국 사이에는 서로 'INF 위반'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미국은 지난 2017년 초 러시아가 9M729 순항미사일(사거리 2천∼5천㎞)을 실전 배치한 것이 INF 조약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상 INF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10월 20일 "러시아가 합의를 위반했다"며 INF 조약을 탈퇴할 방침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월 2일 "러시아가 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며 6개월 뒤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역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우리의 답은 대칭적이다. 미국 파트너들이 조약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이에 우리도 참여를 중단한다"고 응수했다.
조약이 파기되면 새로운 군비경쟁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INF 조약은 냉전 시기 군비 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첫 외교적 노력을 결실로 평가받아 왔지만, 폐기 시 핵·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최소한의 안전핀마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미국의 유럽 내 동맹들은 파국을 피해야 한다며 미국의 탈퇴에 우려를 표시했다.
NATO 국가들은 자국 영토 내에 INF 조약을 위반하는 핵무기가 배치되길 희망하지 않는다면서 대신 정보 감시 및 정찰, 공군과 미사일 방어 등 미국과 더 많은 군사 훈련을 옵션으로 논의해 왔다고 더힐은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우리는 INF 조약이 폐기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조약을 살리도록 러시아가 이를 준수할 것을 여전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 조치는 조약에 가입하지 않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도 알려져 동북아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이 탈퇴 후 태평양 역내에 핵전력을 증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탓에 미국의 탈퇴 공식화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와 함께 미·러 간의 또 다른 군축 합의인 '신전략 무기감축 협정'(뉴 스타트·New START)도 파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 때 체결된 이 협정은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배치하는 핵탄두 수를 각각 1천55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미국의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21년 만료되는 이 협정의 갱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