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제소·국제여론전 박차…"일본 조치에 우리도 맞대응 강구"
당정청, 조만간 종합대책 마련…국내 산업 자생력 다지기 속도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우방국)에서 제외하는 극단적이고 조치를 단행하자 한국 정부가 '한국 백색국가에서의 일본 제외'를 첫 번째 카드로 꺼내 들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각종 국제무대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과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력하는 등 국제 여론전에도 더욱 속도를 낸다.
일본이 28일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를 시행하며 추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한국 정부도 추후 진행 상황을 보며 단계적으로 대응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대화의 장(場)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대응해왔다.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고위급 대화를 제안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2∼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의를 계기로 양국 통상장관이 만나 대화하자며 막바지 설득작업을 벌였다.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고위급 관료가 만나 해결점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였다.
일본이 지난 4일 한국에 대한 첫 번째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 이후 한국도 세게 맞붙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부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염두에 두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대응을 자제했다.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결국 각의 개최 직전 양국 외교장관이 만났고 미국이 보다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펼치면서 한일 갈등이 극적으로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의 끈질긴 노력과 국제사회의 바람을 무시하고 한국에 대한 2차 경제보복을 감행했다.
일본은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오는 28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 각의 후 열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 맞대응이 반복되는 건 두 나라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일본 조치에 따라 우리 정부도 이와 관련한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WTO 제소에도 박차를 가한다.
정부는 일본의 결정이 자유무역에 관한 WTO 규범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이른 시일 내 일본을 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앞서 일본과의 수산물 분쟁에서 '역전승'을 거뒀던 한국 통상팀이 일본을 제소하기 위한 법리적 근거와 전략을 짜고 있다.
지난주 WTO 일반이사회에 한국 대표로 다녀온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한국이 편한 날짜에 (제소)할 것"이라며 "열심히 칼을 갈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WTO 제소는 최종판정까지 2년여가 소요돼 당장 일본에 타격을 주거나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이에 정부는 주요국과 국제기구, 신용평가사, 투자은행(IB) 등을 대상으로 아웃리치(대외접촉)를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일본의 조치는 자유무역주의 기반 국제질서를 크게 훼손하고 있고 글로벌 밸류체인을 교란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가져온다는 점을 피력할 방침이다.
외교·안보적으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가 거론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상응조치'로 지소미아 연장 거부 카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외에도 일본산 상품·서비스에 시장접근을 제한하고 관세를 인상하거나 기술 규정 및 표준 인증심사 강화와 같은 비관세장벽을 세우는 방안이 상응조치로 나올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맞대응과 함께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의 주요 품목의 물량과 대체수입처 확보를 지원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 인력 운용 유연화 등 공장 신증설을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해서는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 2천732억원 반영을 추진한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관련 기술에는 신성장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 세액공제 적용을 확대하고 각종 관세 혜택과 금융적 지원도 병행하기로 했다.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정책적 역량을 집중한다.
대규모 투자와 R&D 혁신 등을 통해 기술개발을 돕고 100여개 전략 핵심품목 중심으로 R&D 등에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홍 부총리는 "이번 기회에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특히 우리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우선으로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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