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유예 조치에 미국 화답 촉구
"미국 주창으로 INF 효력 중단"…조약 폐기 공식 발표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 외무부가 2일(현지시간) 미국의 탈퇴로 냉전시절인 지난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폐기된 데 대해 미국 측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미국의 INF 조약 탈퇴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심각한 실수를 범했다"고 비난했다.
외무부는 "미국은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했다는 식의 명백한 허위 정보를 근거로 한 선전전을 펼치면서 조약을 둘러싼 사실상 극복할 수 없는 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했다"면서 "그 원인은 분명하다. 미국은 조약이 설정한 제한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호 간의 이의 제기에 대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미국은 러시아에 명백히 수용 불가능한 최후통첩성 요구를 제시했다"면서 러시아가 제안한 모든 실질적 해결 방안은 배격했다고 주장했다.
외무부는 "미국은 INF가 낡았으며 조약에 제3국들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 뒤에 위선적으로 숨었다"면서 "이 국가들이 조약의 의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등의 통제받지 않는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을 근거로 INF 조약의 무용성을 주장한 미국 측 견해를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INF 파기는 미국이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들을 만족시키지 않는 모든 국제 협정을 폐기하는 노선을 택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현존하는 군비통제 시스템의 사실상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무부는 뒤이어 "미국의 탈퇴로 인한 INF 조약 효력 중단은 상황 안정화와 미·러 관계의 합당한 예측 가능성 수준 유지를 위한 시급한 조치를 필요로 한다"면서 미국이 INF 폐기 이후 상황 관리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외무부는 "우리는 이미 미국의 중·단거리 미사일이 배치되지 않는 지역에 (러시아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전개하지 않는다는 일방적 모라토리엄(유예) 조치를 취했다"면서 "미국도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해당 범주의 미사일 전개를 자제하고 글로벌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면서 러시아의 본보기를 따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 긴장 고조의 모든 책임은 미국 측이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미국과의 INF 조약 효력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외무부는 이날 법률 정보 공시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8월 2일 자로 지난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옛 소련과 미국 간에 서명됐던 INF 조약의 효력이 미국 측의 주창으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미국도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INF 조약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다고 밝혔다.
INF 조약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이에 체결돼 이듬해 6월 발효했다.
양국은 조약 발효 후 3년 내로 사정거리 500~5500km의 지상 발사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하고,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천692기를 없앴다.
양국은 해당 범주의 미사일을 추가로 개발·생산·배치하지 않는다는 데도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가 INF에 저촉되는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유럽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하면서 양국 간에 조약 위반 논쟁이 벌어졌고, 뒤이은 양측의 오랜 공방 끝에 결국 조약이 폐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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