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만행, 사죄·배상으로 못 지워…과거는 지울수 없어 계속 사죄 필요"
"일본, 반성하지 않으려는 점 굉장히 일관적…과거사 상처에 소금 뿌려"
"독일 정치교육, 올바른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의 핵심적인 역할"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가 다 해결됐다는 입장인데, 과거 만행의 청산 문제를 법리로만 따지는 것은 독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네스 모슬러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는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심각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독일과 일본 간에 과거사 반성에 대한 인식 차이를 설명했다.
모슬러 교수는 "독일은 폴란드 등 전쟁 피해국과의 협약을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로 보는데, 일본은 협약을 하나 맺었다고 영원히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보여 굉장히 실망스럽다"면서 "과거사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모슬러 교수는 "과거는 지울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사죄해야 한다"면서 "이웃 피해 국가에 대한 사죄는 현재와 미래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독일이 아직 폴란드, 그리스 등과의 전쟁 배상 논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관련, "너무 큰 만행을 저질렀기에 모든 상처를 치유되지 못했다"면서 "이는 결국 독일이 저질렀던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사적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슬러 교수는 "독일은 정치교육 등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해왔다"면서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정치교육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독일은 끊임없이 과거사 사죄를 한다. 올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만 해도 여러차례 했다. 독일 고위직들은 피해국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관련 행사에도 어김없이 참석해 고개를 숙인다.
▲ 1970년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뱌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폴란드인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는 사죄나 배상으로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독일은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나. 과거는 지울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사죄를 해야 한다. 많이 할수록 좋다. 사죄의 진정성은 계속 전달돼야 한다. 이웃 국가에 대한 사죄는 현재와 미래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더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피해국의 세대도 교체된다. 과거를 모르는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 사죄를 해야 한다.
-- 독일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사죄에 대해 국민의 정서는 어떤가.
▲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본다. 고맙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상징적인 행위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높게 평가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 폴란드 등에 진심 어린 사과 등 굉장히 큰 노력을 했기 때문에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극우 세력은 '아직도 사죄하느냐'고 하지만, 이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 일본은 독일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전시를 전방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의 압력이 너무 강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결국 건립이나 전시를 취소시키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가 전시관에 압력을 넣게 되고, 예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 입장에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같은 추축국이기는 하나, 먼 나라이다. 일본과 한국 간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갖는 게 쉽지 않다. 독일도 여전히 자신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데 급급하고,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아직도 제국주의 시절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식민지배와 관련해선 배상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 등에 반성하다가 식민지 시대의 만행에 대해 멀어진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로비 활동을 잘한다. 독일인에게 일본에 대한 인식은 맛있는 음식과, 예쁜 공예품, 이런 것들이다.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인식은 적다.
-- 독일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려는 극우세력이 부정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더 철저해지는 듯한 인상이다.
▲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인종주의와 차별, 나치 찬양을 배격하기 위해 과거사의 반성을 강조할 수 있다. 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독일에서는 계속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독일 학자로 과거사 반성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어떻게 보는가.
▲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가 다 해결됐다는 입장인데, 법리적으로도 논란이 계속되어온 데다 과거 만행의 청산 문제를 법리로만 따지는 것은 독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독일은 폴란드 등 전쟁 피해국과의 협약을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로 본다. 그러나 일본은 협약을 하나 맺었다고 영원히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보이는 데 굉장히 실망스럽다. 과거사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굉장히 비합리적인 상황이다. 반성하지 않으려는 점이 굉장히 일관성 있다. 일본의 이런 태도가 동아시아 안정과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까 봐 걱정이다.
-- 일부 독일 언론은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함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독일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 일본의 이런 행동이 세계 무역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독일로까지 파장이 미칠지 독일 입장에서는 관심 있게 봐야 한다. 다만, 아직은 구체적인 영향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민 정치교육 영향이 있지 않은가.
▲ 정치교육 등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해왔다. 극우주의자 말고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독일 사회의 총의가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정치교육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이 이런 점에선 잘해왔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계속 역사의식을 확인하고 강조해야 한다. 평화의 지속성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노력하고 반성하는 데 달려있다. 그래야 피해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다. 민주주의 자체가 그렇다. 민주주의를 개선, 유지, 발전시키려면 매일매일 정치교육 등에 투자해야 한다.
-- 폴란드와 그리스는 독일에 전쟁 배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과거사 반성 문제에서 독일이 잘해왔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과거사는 완벽하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잡음은 당연하다. 너무 큰 만행을 저질렀기에 모든 상처가 치유되지 못했다. 이는 결국 독일이 저질렀던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사적 교훈이 된다. 남아있는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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