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환율전쟁에 기업들 노심초사…"수출업종도 웃지 못한다"

입력 2019-08-06 14:33  

미중 환율전쟁에 기업들 노심초사…"수출업종도 웃지 못한다"
환율 변동속도 가파르고 예측 어려워…경영 불확실성 커져
日수출규제에 업친데 덮친 격…외화빚 많은 기업 이자부담 확대

(서울=연합뉴스) 업계팀 = 일본의 수출규제에 미중 환율전쟁이 겹치며 원/달러 환율이 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기업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은 수출 업종에 가격 경쟁력 상승과 수익성 개선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문제는 속도와 방향이다.
환율이 너무 빨리 움직이는 데다가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태다.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은 이자 부담이 커지며 한숨도 깊어진다.
원/달러 환율은 6월 28일 1,154.7원에서 5일 1,215.3원까지 뛰었고 6일엔 1,220원으로 개장했다가 다소 주춤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같은 한일 경제전쟁과 미중간 갈등 영향을 감안한 하반기 수출 대응책을 이르면 이달 말 마련할 계획이다.


◇ '반·디' 일부 호재…"불확실성 악재가 더 큰 문제"
전자업계는 부품 사업에서는 환율 효과를 일부 기대할 수 있지만 완제품 부문에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반도체를 주로 국내에서 생산해 대부분 수출하기 때문에 수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갈 뿐 아니라 매출과 영업이익을 원화로 계산하면 실적 개선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완제품은 현지 생산과 현지 통화 결제를 우선으로 하고 있어 원/달러 환율 변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일부 국가에서는 현지 환율 변동에 따라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LG전자[066570]도 사업상 결제 통화가 약 35개에 달하기 때문에 미국 달러화와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등이 모두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환율 변화에 따른 우려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영업활동에서 발생하는 환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헤지'를 상시적으로 염두에 두고 경영을 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환율 변동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글로벌 경영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가 일본 수출 규제까지 겹친 탓에 전반적인 업황 부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금융·외환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최근 환율 상승이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 등 보호무역 장기화 가능성,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이 배경이 됐기 때문에 긍정적 요인보다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기업 투자 지연과 수요 위축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수출품목 자동차도 환율 단기급등은 반갑지 않아
대표 수출 품목인 자동차는 일반적으로는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익성이 개선된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 환율상승 효과를 상당히 봤다.
그럼에도 환율 급등은 우려 요인이다. 환율 변동성 확대는 수출 채산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출 기업에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변동성이 크지 않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종에서는 대부분 환헤지를 해두기 때문에 환율상승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환율, 무역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경기침체가 닥칠 경우 해외 선박발주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진다.

◇ 정유업계 환율 민감하지만 대비돼 있어
기본적으로 환율 상승으로 인해 원유가격이 오르면 정유업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유사 관계자는 "환율 변동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미중 갈등이 심화해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지면 국내 정유사 등 수입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환율에 민감한 업종 특성상 환율 변동성에 대비해 놓고 있다.
또 생산하는 제품의 상당 부분을 수출하기 때문에 수입대금 증가가 상쇄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평소 영업이익 환효과와 환차손익이 중립이 되도록 하고 있어 회사 전체 손익 관점에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유동성 관점에서도 현재까지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환율 상승으로 석유화학제품의 원재료 수입 가격도 오르는 것은 부담이지만, 반대로 수출에서는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수입 비중이 크긴 하지만 생산제품을 대부분 수출하기 때문에 오히려 환율 상승이 호재인 면도 있다"면서 "다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은 경영활동에 제약을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외화차입 많은 항공사들 악재 겹쳐 울상
업종 특성상 외화부채와 달러 결제가 많은 항공업계는 환율이 더 오를까 우려하며 외환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유류비, 해외 체류비, 항공기 리스료 등을 모두 달러·유로 등 외화로 지급한다.
대한항공[003490]은 올해 3월 말 기준 미화 부채가 90억달러 규모로 전체 부채의 45%를 차지한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장부상으로 약 900억원의 평가손실이 생긴다.
아시아나항공[020560]은 외화부채 중 유로화 비중을 높여놔서 충격이 다소 덜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일 관계 경색으로 노선이 감축되는 상황에 원·달러 환율까지 상승해 악재가 겹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운임 수입과 비용 지출이 동시에 환율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 표시 매출 증가와 원가율 하락으로 영업수익성이 개선되지만 외화부채의 원화표시 금액이 커져 영업외수지가 나빠진다.
이처럼 수입과 비용이 함께 늘기 때문에 환율이 급변하지 않는 한 순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철강업계, 철광석 가격 예의 주시…건설은 중립적
철강업계는 중국은 내수 위주 시장이라 철강재 수출에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면서도 환율 변동에 따른 철광석 가격 상승 등의 여파에 주목하고 있다.
철강재의 원재료인 철광석은 주로 브라질, 호주 등에서 들여오는데 환율이 계속 오르면 철광석 수입 가격이 따라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광석 가격 인상에 헤징(가격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실시하는 금융거래 행위)이 어느 정도 돼 있기는 하지만, 환율 급등 시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처를 바꾸면서 철강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지만, 한국 업체에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철강재는 수출보다는 내수용으로 더 많이 쓰이고 한국보다 가격경쟁력도 떨어지는 편"이라면서 "국내 철강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건설업은 환율이 오르면 해외 현장에서 환차익이 발생하는 동시에 현지에서 기자재를 구입할 때 비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대부분 공사대금을 일정 환율로 고정해놓고 받는 환헤지를 해놓기 때문에 실제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는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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