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합의 실패' 위기 처한 이란 외무, 美 제재로 입지 회복

입력 2019-08-06 20:25  

'핵합의 실패' 위기 처한 이란 외무, 美 제재로 입지 회복
보수세력 "미국에 속았다" 공세…미국 제재가 '훈장'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존폐 위기에 처하면서 이란 보수세력의 비판에 시달렸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미국의 제재로 적어도 국내에서는 '기사회생'했다.
자리프 외무장관은 핵합의의 주역 중 한 명으로 2015년 7월 핵합의가 성사되자 단숨에 이란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고교 시절부터 미국에 조기 유학해 서구식 어법과 영어에 능통한 덕분에 그는 서방에 완고하고 경직된 모습으로 인식됐던 이전 외무장관과 달리 온화하고 세련된 이란의 새로운 이미지를 대외에 선보였다.
이후 그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뒤를 잇는 온건 개혁파의 대선 주자의 반열에까지 오를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가 커졌다.
그러나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합의를 파기하면서 이란을 장밋빛 미래로 안내할 것 같았던 핵합의가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핵협상의 실무 총책임자였던 그도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핵합의를 반대했던 이란 내 보수세력과 군부는 미국의 속임수에 그가 어리석게 속아 넘어갔다면서 로하니 대통령과 자리프 장관에 공세를 높였다.
올해 3월 자리프 장관은 돌연 외무장관을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시리아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했는데 이란에서 실권을 쥔 혁명수비대가 외무부를 거치지 않고 최고지도자에 직접 보고한 뒤 정상 방문을 진행했다.
자리프 장관은 보수 세력의 '외무부 패싱'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표를 던졌던 것이다.
이 사퇴 사건은 최고지도자와 대통령이 자리프 장관에 대한 신임을 표하는 식으로 빠르게 무마됐으나 자리프 장관의 국내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그가 고교와 대학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이력도 보수 세력의 압박에 빌미가 됐다. 이란 정계에서는 '순교 전쟁'이라고 부르는 1980∼1988년 이라크와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로하니 정부가 추천한 장관 후보자 일부가 의회의 거부로 종종 임명되지 못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참전 경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리프 장관은 하필 이 전쟁 기간 미국에 유학 중이었다.
이후 이란마저 유럽의 미온적인 태도를 이유로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면서 자리프 장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핵합의와 함께 그의 위상과 영향력은 더 내리막길을 걸었다.
반전의 발판은 뜻밖에 '적'이 제공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자리프 장관을 특별지정 제재대상(SDN)에 올린 것이다.
미 재무부는 이미 제재 대상인 이란 최고지도자의 테러 지원 행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그를 제재하면서 그가 악행을 저지르는 이란 정권의 '1번 대변인'으로서 허위 정치선전을 국제사회에 유포했다고 비난했다.
'정권의 1번 대변인'이라는 미국의 발표는 오히려 자리프 장관에게 '자랑스러운 훈장'이 됐다.
이란 각계에서 그에 대한 칭송과 환대가 이어졌다.
로하니 대통령은 6일 외무부를 방문해 자리프 장관을 '이슬람에 해박한 외교의 천재'라고 치켜세우고 "미국이 우리의 외무장관을 약하게 하려고 그를 제재한다면 그는 어느 때보다 더 강하고 인기가 높아질 것이다"라며 힘을 실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도 이날 자리프 장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그의 훌륭한 임무 수행에 감사한다"라며 "미국이 자리프 장관을 제재한 것은 그가 미국 내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라고 호평했다.
특히 자리프 장관이 지난달 유엔 회의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제재 부과를 무릅쓰고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초대를 거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수 세력이 그에게 붙인 '친미 딱지'마저 무색해졌다.
그가 지난달 15일 뉴욕에서 한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도 이란 국민의 환심을 샀다.
미국의 경제, 군사적 압박에 대해 그는 이 인터뷰에서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석유를 팔겠지만 우리의 존엄을 팔지는 않겠다"라며 "중동에서 전쟁이 난다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으니 우리가 그런 일을 피하도록 해달라"라고 말했다.
그가 인기를 회복하자 다시 차기 대선 주자 물망에 오르는 분위기다.
자리프 장관은 그러나 5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외무장관을 그만두면 당신들(보수세력)이 생각하는 그 자리(대선 후보)에 있지 않을 것이다"라며 "나는 집에 있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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