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개별허가' 품목 지정 안하고 '특별일반포괄허가'는 유지
백색국가 제외 기조는 변함 없어…우회수출에도 엄격 대처 방침
정부 "확전 유보라고 보긴 일러"…내일 한국 백색국가 명단서 일본 제외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일본 정부가 7일 공개한 수출규제 시행세칙은 수출에 어느 정도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특별일반포괄허가' 제도를 유지하고 기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외에는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다.
수출절차가 까다로운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 제외 기조는 사실상 변한 것이 없어 일본이 대(對)한국 경제전쟁 확전을 유보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시행세칙 '포괄허가취급요령'도 함께 공개했다.
포괄허가취급요령은 백색국가 제외 관련 하위 법령으로, 1천100여개 전략물자 품목 가운데 어떤 품목을 개별허가로 돌릴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추가 피해규모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포괄허가취급요령에서 한국에 대해 개별허가만 가능한 수출품목을 따로 추가하지는 않았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을 개별허가 대상으로 변경한 바 있으며 이 중에서 아직 개별허가가 나온 곳은 없다.
일본 정부가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은 데 따라 일단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직접 타격을 받는 기업들은 기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 등 외에 현재로선 더 늘어나지 않게 됐다.
일본, '백색국가서 한국 제외' 시행령 공포…28일부터 시행 / 연합뉴스 (Yonhapnews)
개별허가를 받게 되면 경제산업성은 90일 안에 수출신청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데, 심사를 고의로 지연시킬 수도 있고 막판에 제출 서류 보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한국 기업을 괴롭힐 수 있다.
하지만 국내기업들의 피해규모가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산업부 당국자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한다는 큰 틀 안에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확전을 자제한 것으로 판단하긴 힘들다"면서 "실제 시행세칙 운용을 어떻게 하고 어떤 추가 조치를 할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중재와 국제사회의 비우호적 여론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일 수 있다"며 "일본이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 등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시행세칙에 따라 기존의 일반포괄허가는 28일부터 효력을 상실하는 반면 기존 특별일반포괄허가는 28일 이후에도 효력을 유지한다.
실제로 일본 기업 등이 군사전용이 가능한 규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경우 오는 28일부터는 3년간 유효한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등 수출 절차가 한층 까다롭게 된다.
이는 한국으로의 전략물자 수출을 우선 전반적으로 개별허가 범주에 넣은 셈으로 개별허가가 아닌 특별일반포괄허가를 받으면 그나마 번거로움이 덜어진다.
특별일반포괄허가란 일본의 전략물자 1천120개 중 비민감품목 857개에 대해서는 수출기업이 일본 정부의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아 수출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인정받을 경우 개별허가를 면제하고 3년 단위의 포괄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일본의 백색국가가 아닌데도 큰 생산 차질을 겪지 않은 것은 특별일반포괄허가제도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에 포함됐을 때는 일본의 어떤 수출기업이든 한국에 수출할 때 3년 단위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백색국가에서 빠지면서 CP 인증을 받은 일본 수출기업만 특별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CP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과 거래하던 한국 기업들은 종전과 똑같이 3년 단위 포괄허가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정부는 CP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 1천300개중 공개된 632곳을 전략물자관리원 홈페이지에 올려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가 부당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조치는 한국에 대한 특별일반포괄허가제를 그대로 이어갔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추가로 개별허가로 전락시킨 품목이 없다는 점에서 산업피해를 최소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출관리 프로그램을 잘 갖춰놓지 못한 일본 소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중소기업은 사실상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실태조사와 함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을 계기로 앞으로는 수출 상대국 분류체계를 백색국가가 아닌 그룹 A, B, C, D로 나누어 통칭하기로 했다.
수출 신뢰도가 가장 높은 A그룹에는 기존 백색국가 26개국이, B그룹에는 한국이 우선적으로 배정됐으나 다른 나라는 아직 명기되지 않았다. 그룹B는 특별 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그룹A와 비교해 포괄허가 대상 품목이 적고 그 절차가 한층 복잡하다.
일본 정부는 별도 유의사항에서 "향후 한국으로의 수출에 대해 우회수출과 목적외 전용 등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할 예정임에 따라 대한국 수출기업들은 최종수요자와 최종용도 등의 확인에 만전을 기할 것"을 기업에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은 15년 만에 일본 백색국가에서 제외됐으며 일본이 백색국가 제도 운용에서 이런 조치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8일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서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 명단(우대국가 '가' 지역·29개국)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전략물자수출입고시개정안'을 안건으로 논의하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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