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극우-반체제 정당의 '어색한 동거' 끝내 파국의 벼랑 끝으로

입력 2019-08-09 18:01  

伊 극우-반체제 정당의 '어색한 동거' 끝내 파국의 벼랑 끝으로
핵심 사안마다 사사건건 충돌…누적된 갈등 TAV 이견으로 폭발
'시계 제로' 상황 속 의회 불신임안 표결 거쳐 '10월 총선' 가능성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서유럽 최초의 극우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정권'. 작년 6월 출범한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두고 외신들이 내린 평가다.
작년 3월 총선에서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자 3개월에 걸친 지루한 협상 끝에 연정이 출범했으나 그 모양새는 다소 어색했다.
기성정치의 해체를 꿈꾸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반(反)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성향의 '동맹'이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 두 실세는 법학자 주세페 콘테를 총리로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들은 각각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과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각각 맡아 진용을 갖췄다.
지지 기반과 정치 철학이 워낙 달라 오래 지속하기 힘든 '어색한 동거'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들은 이탈리아를 바꿔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연정은 이후 줄곧 파열음을 냈다. 프랑스 리옹-토리노 간 고속철도(TAV) 건설 사업을 비롯한 인프라 구축부터 감세, 사법개혁,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설정까지 모든 핵심 정책 사안에서 부딪혔다.
부유한 북부를 기반으로 한 동맹과 남부 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오성운동은 각자의 지지 세력을 만족시킬 정책에 매몰됐고 이는 필연적인 대립으로 이어졌다. 토리노를 중심으로 북부 지역에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갈 TAV 사업을 놓고 극명하게 찬(동맹)-반(오성운동)이 나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두 당의 희비를 가르는 분기점이 됐다.
작년 3월 총선에서 32%가 넘는 표를 얻어 창당 9년 만에 단숨에 최대 정당이 된 오성운동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17%에 그치는 저조한 득표율로 중도좌파 민주당(PD)에조차 밀려 3위로 전락했다.
반면, 총선에서 17%의 표를 얻은 동맹은 살비니 부총리의 강경한 난민 정책이 민심을 파고들며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 이를 토대로 유럽의회 선거에선 예상을 뒤엎고 34%가 넘는 득표를 하며 일약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기세등등한 동맹 내부에서는 이때부터 연정 파기와 조기 총선론이 당내에서 조금씩 세를 얻기 시작했고, 오성운동과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연정 파국의 발화점은 전날 상원에서 진행된 TAV 프로젝트 관련 표결에서 오성운동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었지만 이미 근본적인 원인은 그 이전부터 차곡차곡 누적돼왔다.
살비니의 연정 붕괴 선언으로 이탈리아 정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각 정당은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유불리를 가늠하며 주판알을 튕기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고공 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살비니의 의도대로 이르면 내주 의회의 연정 불신임안 표결과 콘테 총리 사임을 거쳐 연정·의회가 동시에 해산하고 조기 총선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총선이 열린다면 10월께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동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10월 초·중순 총선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봄에 총선을 치러온 이탈리아 역사상 가을 총선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단 현재 판세만 보면 동맹을 비롯해 어느 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일간 코리에라 델라 세라가 공개한 지난달 31일자 여론조사를 보면 동맹이 36%의 지지율로 여전히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민주당이 20.5%로 2위, 오성운동이 17.8%로 3위를 각각 지키고 있다.
이어 동맹과 비슷한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의 형제들'(FdI)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의 '전진 이탈리아'(FI)가 각각 7.5%, 7.1%로 뒤를 따른다. 지금 이러한 구도가 지속한다면 또다시 연정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동맹을 중심으로 FdI와 FI가 가세해 '우파연합'을 구성하는 것이다. 세 정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50.6%로 과반을 살짝 넘게 된다.
우파연합이 실제 이뤄질 경우 살비니 부총리는 총리로 추대돼 국정을 총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세 정당이 비슷한 정치 성향을 보이긴 하지만 정책 사안별로 서로 입장이 다른 경우도 있어 설사 연정을 구성한다고 해도 유연하게 제대로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연정 붕괴의 진원지가 된 TAV 관련 상원 표결에서 FI가 기권한 것은 우파연대가 그리 단단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의회에서 연정 불신임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이탈리아 헌법상 연정·의회 해산의 최종 결정권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섣불리 조기 총선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마타렐라 대통령으로선 내달부터 유럽연합(EU)과 2020년 예산안을 놓고 협상에 들어가는 점을 고려해 연정·의회 해산을 보류하고 전문 관료 중심으로 임시 내각을 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럴 경우 총선 일정이 다소 뒤로 미뤄질 수 있다.
세계적인 정치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정치분석가 페데리코 산티는 "아마도 연정이 해체되긴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총선은 내년 초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이 현 내각을 해산하되 연정 구성권을 다른 정당에 주고 새로운 내각을 출범시킬 개연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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