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147명 탄 스페인 구조선 伊 영해 진입…람페두사 근해 정박
살비니, 입항 금지 새 칙령에 서명…당분간 대치 국면 이어질 듯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법원이 정부의 비정부기구(NGO) 난민 구조선 입항 금지 명령을 뒤집었다.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 지방 행정법원은 14일(현지시간) 스페인 구호단체 '오픈 암즈'(Open Arms) 소속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허용했다.
법원은 "난민들에 대한 검진·정신심리 보고서 내용에 비춰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면서 '상황의 예외적인 엄중함과 긴급성'을 언급했다.
구조된 난민들이 열흘 넘게 해상에 발이 묶이는 등 가중되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조속히 해소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극우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주도한 구조선 입항 금지 명령을 정면으로 부정한 모양새다.
법원 결정에 따라 난민 147명을 태운 오픈 암즈 구조선이 이탈리아 해군 함정 2대의 호위 속에 이탈리아 영해로 진입했으며, 15일 오전 현재 람페두사섬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서 일단 대기 중이라고 ANSA 통신은 전했다.
오픈 암즈는 이탈리아 정부가 법원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무리하게 항구에 닻을 내리진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픈 암즈 구조선은 이달 초 세 차례에 걸쳐 리비아 연안에서 총 160명의 난민을 구조했다.
하지만 이탈리와 몰타 등 인접국이 모두 입항을 거부해 최초 구조 시점 기준으로 13일째 지중해 공해상을 맴돌았다.
구조된 난민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 등 일부는 긴급한 의료 조치의 필요성 때문에 이탈리아로 먼저 옮겨졌고, 현재는 147명이 승선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구호단체 'SOS 테라네'와 '국경 없는 의사회'(MSF)가 공동 운영하는 난민구호선 '오션 바이킹'도 리비아 연안에서 난민 350여명을 구조했으나 입항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수일째 지중해 공해상에 머물고 있다.
살비니는 법원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오픈 암즈 구조선의 입항을 불허하는 새로운 칙령에도 서명했다.
살비니는 "과거로 회귀해 항구를 열어주고 이탈리아를 유럽의 난민 캠프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나는 절대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앞서 내각을 이끄는 주세페 콘테 총리가 이날 살비니에게 서한을 보내 난민들의 하선을 허가해줄 것을 촉구했으나, 살비니는 "그들이 왜 이탈리아 영토에 내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불가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내각 안에선 법원 결정을 무시하면서까지 구조선 입항 금지를 고수하는 살비니의 행태에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엘리자베타 트렌타 국방장관은 "법원 결정을 어기는 것은 형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살비니가 제안한 새 칙령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다고 한다.
트렌타 장관은 법원 결정 직후 해군에게 지시해 람페두사 근해까지 오픈 암즈 구조선을 호위하게 한 장본인이다.
다만, 살비니가 구조선 입항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커 당분간 격한 대치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실권자이자 치안 정책을 총괄하는 살비니는 그동안 강도 높은 반(反)난민 정책을 주도하며 유럽연합(EU) 등과 갈등을 빚어왔다.
최근에는 난민구조선이 정부 허가 없이 이탈리아 영해로 들어올 경우 최대 100만유로(약 13억6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선박을 몰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난민법이 의회를 통과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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