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700명 조사 보고서…10명 중 8명 "가족과 퇴직 의논 안 해"
'오늘은 뭐하지' 생각에 퇴직 실감…행복점수 男은 재직중, 女는 퇴직후에 더 높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베이비붐(1955∼1963년)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중년 퇴직 후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퇴직자 10명 중 8명은 가족과 퇴직을 의논하지 않았고, 퇴직 후 소득은 40% 이상 줄었지만 지출은 20%가량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품위유지, 사교와 관련한 비용이 줄고 부모와 자녀 지원을 위한 지출은 그대로였다.
라이나전성기재단의 헬스&라이프 매거진 '전성기'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5일 이 같은 내용의 '대한민국 중년 퇴직 후 라이프 스타일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퇴직 후 5년 이내의 만 45∼70세 대한민국 남녀 700명을 설문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됐다.
이에 따르면 한국 중년들은 생애 주로 근무한 직장에서 평균 15.3년을 일하고 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령, 성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45∼54세 퇴직자는 10.8년, 55세 이상은 18.8년을 근무한 뒤 퇴직했다.
55세 이상 남성은 22.7년을 근무, 같은 연령대의 여성보다 근속연수가 9.8년 길었다.
퇴직 이유를 보면 55세 미만은 전직을 위한 적극적 퇴직형이, 55세 이상은 버티다가 그만두는 수동적 퇴직형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들의 75.8%는 가족에게 자신의 퇴직 관련 계획을 구체적으로 의논하지 않았다. 중년의 퇴직은 가족의 일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지만, 19.1%는 가족이 자신의 퇴직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 비율은 연령이 높을수록 더 높았다.
퇴직 전후 소득을 비교해보면 평균 월소득은 470만원에서 284만원으로, 월지출은 267만원에서 202만원으로 줄었다.
지출을 가장 많이 줄인 항목은 옷, 피부관리 등 외적품위를 위한 비용(59%), 모임, 밥값 등 사교에 드는 비용(51.3%)이었다.
반면 경조사비, 부모님을 위한 지출, 자녀에 대한 지원은 지출을 줄이지 못했다. 세 항목은 사실상 가계지출의 고정비가 된 셈이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장 김난도 교수는 "퇴직자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자신과 관련된 지출은 줄이지만 자녀와 부모에 대한 지원은 줄이지 않는 현실은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부양해야 하는 베이비부머의 상황을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또 응답자의 35%는 퇴직한 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후련했다"고 답했고, 일상 중 퇴직을 실감하는 때는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퇴직 후 가장 듣고 싶었다는 말은 "수고했다"였다. 이는 55세 이상(35%)보다 55세 미만(44%)이, 남성(36%)보다 여성(42%)이 더 듣고 싶어했다.
센터는 "나이가 들고 근무 기간이 오래될수록 '수고했다'는 말을 기대할 것이란 예상과 다른 결과"라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젊을수록 상대적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적었던 탓으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이들의 현재 행복 점수는 평균 65.6점으로, 남성(64.7점)보다 여성(66.7점)이 높았다. 다만 행복 점수 변화는 퇴직 직후 급락했다가 다시 오르는 'V자형'을 이뤘다.
남성의 행복 점수는 재직 중일 때보다 퇴직한 지금이 4.4점 낮았지만, 여성은 현재가 4.4점 높은 점도 눈에 띈다.
이와 함께 퇴직자의 53%는 재취업이나 창업을 이미 했으며, 이를 준비 중인 사람까지 포함하면 87%가 완전 은퇴가 아닌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종을 보면 창업자는 이전 경력을 활용하거나 유사한 일을 하는 데 반해, 준비 중인 사람은 상대적으로 취미와 재능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센터는 "이상은 새로운 일인데 현실은 했던 일인 셈"이라며 "재취업이나 창업 성공을 위해선 새로운 도전보다 기존 경력을 활용하는 편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 결과"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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