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 내각서 물러난 살비니 처지 비꼬며 가족까지 거론
정치권 "표현·비판의 자유 넘어" 비판…사측 징계 절차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국영 라디오방송의 고위 간부가 극우 정당 동맹 대표 마테오 살비니에게 '자살'을 운운하며 막말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지 정가에서는 저널리즘의 품격을 저버린 행위라는 비난이 거세다.
7일(현지시간)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에 따르면 국영 Rai 라디오1의 편집장인 파비오 산필리포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성운동-민주당 간 새 연립정부 수립으로 내각에서 물러난 살비니에게 경멸과 증오심이 가득한 장문의 편지를 실었다.
산필리포는 살비니의 '충성스러운 반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당신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나는 이 상황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당신의 지지율이 최소 20∼25% 빠졌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은 유럽의회 의원도 아니고 장관직도 잃었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며 "당신에게 익숙한 삶을 고려할 때 당신은 6개월 이내에 자살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는 또 "당신의 딸이 안쓰럽지만, 곧 회복할 것이다. 그녀가 부디 자격 있는 사람들을 따를 수 있도록 하라"라며 가족생활까지 거론해 살비니의 심기를 긁었다.
작년 6월부터 1년 2개월간 이어진 오성운동-동맹 간 연정에서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지낸 살비니는 지난달 초 정책적 견해차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기해 정국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다.
강경 난민 정책을 밀어붙이는 등 자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극우적 행보로 지지율이 치솟자 조기 총선을 통해 총리직에 오르려는 정치적 야심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오성운동이 의회 내 원수지간으로 통하는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과 손잡고 새 연정을 구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내각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졸지에 집권 여당에서 야당 인사로 전락하는 신세가 됐다.
산필리포는 이처럼 궁지에 몰린 살비니의 정치적 처지를 감정적으로 비꼬고 비난하는 데 글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정치권은 여야 없이 일제히 산필리포의 몰상식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비판했다.
동맹의 마시밀리아노 카피나니오 하원의원은 "'자살'을 운운한 것은 명백히 표현·비판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라며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카피나니오 의원은 의회의 'Rai감독위원회'에 산필리포가 쓴 페이스북 글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의 수장으로 총리를 지낸 바 있는 마테오 렌치 의원도 "살비니의 자살과 그의 딸을 언급한 저널리스트의 글을 읽으면서 몸서리를 쳤다"며 "품위를 잃은 해당 저널리스트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고 일갈했다.
당사자인 살비니는 비판의 성격을 차치하고 산필리포가 자신의 가족을 거론한 데 대해 특히 큰 분노를 표했다.
그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글을 쓰고 모욕하라. 난 익숙해져있다"면서 "하지만 내 아이들을 언급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파문이 확산하자 Rai 측은 성명을 통해 "회사는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산필리포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사측은 또 다음 주 초 자사 직원들에 소셜미디어 사용 금지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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