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정국 혼란 속 전·현직 英 총리, 7주 만에 처지 역전"
NYT "보라, 지금 누가 웃고 있는지"…英 언론 "메이 브렉시트案 부활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가 8일(현지시간) 지역구 현안을 챙기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 포착됐다.
석 달 전 정치적으로 만신창이가 돼 사임할 때와는 딴판으로 밝은 표정에 여유가 넘쳤다.
메이 전 총리는 혼신을 쏟은 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이 의회에서 거부당하며 수모 속에 눈물로 총리직을 내놨다.
올해 5월 사의를 밝히는 연설에서 메이 총리는 "나는 어떤 나쁜 의도도 없이 지대하고 끊임없는 감사로 내가 사랑하는 나라를 섬겼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눈에는 물기가 고였다.
언론은 메이 총리가 영국에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지 못했다고 가혹하게 비판했다.
그는 무뚝뚝하고 경직된 언행으로 '로봇 같은 메이'라는 별명으로 조롱을 당했고, 올들어 막판 협상과 의회 토론으로 강행군이 이어지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약해서 깨질 것 같다'(fragile), '끝장났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메이 전 총리 공격의 선봉에 선 인사가 바로 후임자 보리스 존슨 총리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구원투수'를 자임하며, 총리직을 낚아챘다.
존슨 총리의 거침 없는 언사와 유쾌한 분위기는 전임자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도" 10월 말에 브렉시트를 강행한다고 선언하면서 "회의론자, 종말론자, 비관론자"를 몰아세웠다.
총리 교체 7주만에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바뀌었다.
존슨 총리는 합의 없는 EU 탈퇴, 즉 '노 딜 브렉시트' 방지 입법에서 완패하고, 조기 총선 시도도 거부당했다.
노 딜 방지법이 확정되면 존슨 총리는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말한 브렉시트 연장을 위해 EU 지도자들에게 '구걸'해야 할 상황에 몰리게 된다.
노 딜 방지법에 찬성표를 던진 당 중진·원로 21명을 출당하는 조처는 강한 당내 반발을 불렀다.
설상가상으로 이달 4일과 7일 친동생 조 존슨 기업부 부장관과 앰버 러드 고용연금부장관의 연쇄 사퇴는 존슨 총리를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
기자들은 그에게 "친동생도 지지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왜 그래야 하는지 사람들이 묻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며 상처를 후벼팠다.
메이 전 총리의 경직된 연설을 조롱하던 언론은 존슨 총리가 경찰학교 행사에서 신입 경찰들을 뒤에 쭉 세워놓고 야권을 비난하는 연설을 한 것을 두고, "적어도 전임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관들을 들러리 세우는 일은 안 했다"며 공격했다.
존슨 총리가 의회에서 좌충우돌하며 굴욕을 겪는 모습은 메이 전 총리의 여유로운 표정과 대비를 이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달 4일 '테리사 메이는 브렉시트로 몇년 간 욕받이를 했다. 보라, 지금 누가 웃고 있는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의원들이 존슨 총리와 사지드 자비드 재무장관을 공격하는 동안 메이 전 총리와 켄 클라크 의원은 대놓고 킬킬거리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썼다.
그에 앞서 3일 밤에는 메이 전 총리가 의회를 떠나는 자동차 안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영국 정치권에서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돈다.
제1 야당 노동당 소속 존 맥도넬 의원은 8일 BBC 방송에 출연해 야권이 메이 전 총리의 합의안을 되살리거나 아예 제2 국민투표로 브렉시트 찬반을 다시 묻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 매체 '익스프레스'는 메이 합의안 부활을 논의하는 초당적 의원 모임도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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