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러·이란 등 22개국에 방송…EU 회원국 중에선 세 번째"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 미국이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이후인 지난 1993년부터 헝가리에서 중단한 '자유유럽방송'(RFE·Radio Free Europe)을 이르면 내년 5월부터 재개할 계획이라고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RFE 방송은 지난 1949년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등 구소련 영향 하에 있던 국가의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널리 알리고 반(反)공산주의 활동을 고무하기 위해 구서독 뮌헨에 설립됐다.
구소련의 위성 국가들은 이 방송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청취를 금지했지만 많은 사람이 이에 귀를 기울여 동유럽 몰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RFE는 현재 러시아, 이란, 벨라루스 등 22개국에 친서방적 내용을 담은 뉴스를 송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언론의 자유가 탄압받고 있거나 제한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나라들이다.
이에 따라 동유럽 국가 가운데 제일 먼저 구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 서구화한 헝가리에서 미국이 RFE 방송을 재개하기로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문은 이 같은 결정은 무엇보다도 점점 더 독재정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 언론 매체 가운데 대부분을 자신의 측근들이 장악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그는 EU(유럽연합) 내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르반 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그를 전 유럽에서 존경받는 '기독교의 수호자'라고 극찬한 지 4개월도 안 돼 이런 결정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과거에도 RFE는 헝가리에서 논란이 됐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 1956년 헝가리에서 소련 공산주의 지배에 항거하는 운동이 일어났을 때 RFE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진행 중이라고 거짓으로 암시함으로써 이 운동을 부추긴 바 있다.
미 의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으면 RFE의 헝가리 방송은 내년 5월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이 주축이 된 대(對)러시아 안보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지난 1997년 가입한 헝가리는 불가리아, 루마니아에 이어 EU 회원국 중에선 3번째로 RFE 방송 대상 국가가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앞서 지난 1월에 RFE 방송대상국가 명단에 올랐다.
헝가리 정부는 아직 자국민을 대상으로 미국의 RFE가 방송을 재개하는 데 대해 언급이 없다.
그러나 데이비드 콘스타인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는 이 방송이 헝가리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콘스타인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 오르반 총리 모두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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