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브런즈윅의 기적' 찾아온 사이먼섬…전원구조까지 놀라움 연속

입력 2019-09-10 10:13   수정 2019-09-10 11:19

[르포] '브런즈윅의 기적' 찾아온 사이먼섬…전원구조까지 놀라움 연속
오후 들어 韓선원 4명 구조작업 급물살…시시각각 낭보에 기대·환호
멀리서 찾아온 현지인들 "안전 구조됐으면…", 무사구조 기원 동참
마지막 구조자 놓고는 끝까지 가슴 졸여…환한 미소 속 대단원의 막

(브런즈윅=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조지아주 브런즈윅 해안에 전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또다른 해상 참사 우려가 팽배했다.
2014년 세월호에 이어 올해 헝가리 다뉴브강 참사를 겪은 한국민에게 해상 사고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자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일이다.

이런 분위기는 9일 낮 기자가 찾은 브런즈윅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국적은 달랐지만 90도로 꺾여져 있는 골든레이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세인트 사이먼섬의 사람들도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브런즈윅의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세인트 사이먼섬과 폴스레이는 인근 브런즈윅 항구로 드나드는 배로 붐비는 곳이지만 여름철에는 인파로 붐비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광객이 한풀 꺾이고 평일이라 사람들이 잦아들 시기지만 기자가 세인트 사이먼섬에 도착했을 때 때아닌 사람들로 붐볐다.
골든레이호가 전복됐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 주민은 물론 한 시간여 거리인 플로리다주의 잭슨빌에서도 현장 상황이 궁금해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전체 24명의 승선인원 중 20명은 전날 구조됐다는 소식 탓인지 이날 관심사는 온통 선체에 남아 있는 한국인 선원 4명의 생사에 쏠렸다.
옷가게를 운영해온 로렌 힐튼 씨는 "이곳에서 30년 넘게 장사했지만 작은 선박 사고조차 보지 못했다"며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4명이 안전하게 구조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관광차 이곳을 찾았다는 데이비드 듀크 씨는 "이렇게 큰 배가 전도된 것은 처음 본다. 충격을 받았다"며 "날씨가 너무 더워 4명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아열대 기후 지역인에다 며칠 전 허리케인 '도리안'이 지나간 탓인지 습도가 매우 높고 외부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어 선원 4명의 건강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일부에서는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배 내부 온도가 50∼60도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오전을 넘기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현지시간 오전 11시께 외신에서 4명 모두 생존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미국 해안경비대는 아직은 전원 생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윽고 해안경비대가 오후 1시께 트위터를 통해 4명 모두 생존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자 그간 걱정과 탄식이 조금씩 희망으로 번지며 전원 구조에 대한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세인트 사이먼섬에서 전도된 골든레이호를 근심스레 쳐다보던 마크 리산테 씨는 비슷한 시각 "어제 구조된 선장과 선원들이 선내 구조를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며 "해안경비대도 중요하지만 선원들과의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안경비대가 선원을 구조하기 위해 드릴로 선체를 뜯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오후 3시께에는 4명 중 2명이 구조됐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처음으로 전해졌다.
또 해안경비대는 잠시 후인 오후 3시30분 기자회견에서 4명 중 3명이 구조됐다고 밝히는 등 시시각각 구조 작업이 진전되고 있다는 희소식이 쏟아졌다.
회견을 진행한 존 리드 대령조차 "꽤 거친 상황이었고 외부보다 상당히 더웠다"며 "30시간, 35시간 가까이 보낸 것을 감안하면 좋은 컨디션이었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조금 뒤 별도 회견장에 선 애틀랜타 총영사관 김영준 총영사는 "해안경비대도 이렇게 빨리 진전되리라 추측하지 못한 듯하다"며 "구조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김 총영사가 불과 2시간 전에 해안경비대 관계자를 만났을 때만 해도 구조 시점을 이튿날 새벽까지로 언급할 정도로 상당히 길게 봤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선원의 구조 작업이 난관이었다. 이 선원은 먼저 구조된 3명과는 다른 곳에 있어 해안경비대가 별도로 선체에 구멍을 뚫어 구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철판이 잘라내는 게 아니라 강화유리를 떼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더욱이 이 선원은 아침부터 물과 음식, 공기를 공급받은 3명과는 달리 구호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일렀다. 그나마 환풍 시스템이 꺼지지 않아 희망을 걸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구조 시점에 대해선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오후 6시께 마지막 남은 이 선원까지 구조됐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이 소식을 애타게 기다려온 모든 이들은 환희 속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브런즈윅의 기적'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전원 구조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전국에서 차출한 구조 전문가들로 북적대던 해안경비대 상황실도, 실시간으로 상황을 챙기며 조마조마하던 총영사관의 사고대책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하게 웃는 표정 속에 스스로 걸으며 구조대에 의해 구급차에 옮겨진 마지막 구조자는 병원에서 우리 총영사관 관계자와 만나 "깜깜한 상황에서 정말 길었고 못 견딜 것 같았다"고 악몽 같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고 한다.
구조활동에 참여한 해안경비대 로이드 헤플린 대령은 "내 16년 경력 중 최고의 날이었다"고 AP통신에 벅찬 소감을 밝혔다.
해안경비대도 마지막 구조소식을 전한 뒤 올린 트윗에서 "브런즈윅의 대원들이 성공적으로 골든레이호의 마지막 승무원이 추가 치료를 받도록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날 구조된 선원들은 인근의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진료를 받고 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외부 인사와의 면회도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병원은 건물 입구에서부터 취재진의 접근을 차단했다.
심지어 전날 구조된 한국의 동료 승무원들이 면회를 갔지만 발길을 돌렸다. 뒤늦게 이를 안 구조자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진한 동료애를 표출했다고 한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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