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매사추세츠대 연구진, 예쁜꼬마선충 스트레스 반응 실험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의 체내에선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아드레날린 분비와 함께 교감신경이 활성화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뇌와 골격근 혈류가 늘어나며 에너지 연료인 포도당이 더 많이 생성된다.
이같이 스트레스 요인에 맞서 공격·방어·도피 등에 쓸 에너지를 준비하는 생리적 각성 상태를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투쟁-도피 반응이 동물의 환경 적응 능력을 떨어뜨리고 수명도 대폭 단축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롭다는 건 일반적 상식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그런 작용을 하는 생리적 메커니즘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의 마크 알케마 신경생물학 교수팀은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10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알케마 교수팀은, 반복적인 투쟁-도피' 반응이 동물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쁜꼬마선충(C. elegans)'에 실험했다.
예쁜꼬마선충은 흙 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선형동물인데, 배양과 냉동 보관이 쉽고 발생 단계도 비교적 단순해 세포 분화 실험 등에 단골로 쓰인다.
알케마 랩(실험실)의 제레미 플러먼 박사 과정 연구원은 "투쟁-도피 반응을 반복해서 활성화하면 선충의 수명이 대폭 짧아지는데 인간도 대체로 비슷하다"라면서 "이런 반응을 반복하면 다른 환경적 도전에 대처하는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선충이 '투쟁-도피' 반응을 하면, 티라민을 분비하는 한 쌍의 신경세포에 자극이 가해지는 게 관찰됐다. 티라민은 아드레날린과 비슷한, 무척추동물의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그러나 열(heat)이나 산화 스트레스와 같이,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환경적 도전에 직면하면 선충의 티라민 분비량이 오히려 줄었다.
이처럼 선충은 급박한 스트레스 요인과 장기적 스트레스 요인을 구분해 다른 식으로 반응하며, 티라민이 그 조절 스위치 역할을 하는 거 같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티라민은 또한 장(腸)에서 유사 아드레날린 수용체(adrenergic-like receptor)를 활성화해 인슐린 신호 경로(insulin pathway)를 자극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인슐린 신호 경로를 자극하면 '투쟁-도피'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가 충족된다. 하지만 환경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동물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인슐린 신호 경로의 하향 조절이 필요하다.
알케마 교수는 "급박한 스트레스 반응과 장기 스트레스 반응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선충도) 스트레스 신경호르몬을 역동적으로 제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라면서 "이런 스트레스 반응 메커니즘은 선충부터 인간까지 (유전적으로) 잘 보존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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