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치자"는 산은에 수은 "기웃대지 말라"…험악해진 이웃사촌

입력 2019-09-15 08:20  

"합치자"는 산은에 수은 "기웃대지 말라"…험악해진 이웃사촌
이동걸 "합병" 발언 후폭풍…수은 "낙하산 인사가 무능 덮으려 해"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여의도공원 서편에 나란히 본점을 두고 있다.
6개로 구획된 부지 중 중소기업중앙회관을 사이에 두고 산은이 4개 구역, 수은이 1개 구역을 이웃해 쓴다.
그런데 추석 연휴 직전에 '이웃사촌'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두 기관의 합병을 주창하면서다.
이 회장은 취임 2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질의응답이 아닌 인사말을 통한 작심 발언이었다.
"정책금융이 많은 기관에 분산돼 있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운을 뗀 이 회장은 "정책금융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산·수 합병론'을 폈다.
그는 "앞으로 면밀히 검토해 산은과 수은의 합병을 정부에 건의해 볼 생각"이라며 "산은과 수은이 합병함으로써 훨씬 더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금융 지원과 구조조정 등 분야에서 두 기관의 기능은 일부 겹친다. 이를 합쳐 인력과 예산을 효율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게 이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합병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부와 협의가 안 된 사견"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실제로 각 기관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나 기획재정부와 사전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파문이 이는 것은 이 회장이 금융권의 대표적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꼽히고 있어 그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다.
갑작스럽게 합병 대상으로 지목된 수은 내부에선 격렬한 반발 기류가 형성됐다.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를 뿐 아니라, 국제금융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벌써 나온다.
수은 관계자는 15일 "수은이 축적해 온 대외거래 전문성이 침식될 우려가 있다"며 "오히려 산은의 대외금융 부문을 수은에 넘기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은이 산은에 합쳐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공적 수출신용기관(ECA) 지위가 위협당하고, 자칫 수출 보조금 지원 대출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CA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유일하게 허용되는 중장기 수출금융 기관인데, 수은이 산은에 합쳐지면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에서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은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기존의 기관에서 ECA를 분리했다"고 전했다.
수은은 이 회장이 일방적으로 합병을 공론화한 것도 부적절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수은은 전직 행장(은성수)이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수장 공백 상태다.
수은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이 회장에 대해 "현 정권에 어떤 기여를 해 낙하산 회장이 됐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책금융 역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이 회장은 (두 기관의) 업무영역과 정책금융 기능에 관한 논의로 본인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능력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zhe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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