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獨측 유연성 필요" 주장 제기돼
日 경제도발 속 한독 간 소재·부품 협력 논의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베를린에서 19일(현지시간) 열린 제18회 한독포럼은 한반도 현실에 대한 독일사회 인식의 한계와 극복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자리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 구축 과정 및 주변국 외교에 대한 독일 측의 이해 부족이 드러나면서도 다자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매개로 양측이 주파수를 맞출 가능성을 나타냈다.
또, 양국 간의 디지털 분야와 소재·부품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협력이 더욱 긴밀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해 향후 실질적인 논의 방향이 주목된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연방의회에서 열린 포럼은 일본의 경제도발로 한일 간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열려 주목을 받았다.
과거사 청산 및 사죄 문제와 관련해 독일이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인 일본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모범 사례로 최근 부각된 탓이다.
더구나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핵심 부품·소재를 독일에서 조달하는 방안도 추진되는 시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아니지만 유럽연합(EU)의 중추인 독일이 대북정책에서 유연하게 나온다면 우리 측에 힘이 될 수 있다.
포럼에는 우리 측에서 한명숙 전 총리와 김황식 전 총리,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 이근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김영진 한독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독일 측에선 한독포럼 독일 측 대표인 하르트무트 코시크 전 연방하원 의원, 카타리나 란트그라프 연방의회 의원 겸 독한의원친선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 한반도 정책의 獨 협조 문제, 한일 갈등 논의돼
포럼에서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기조발제에서 "북핵 문제는 남북한 또는 동북아시아에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에 관계되는 문제로, 독일 및 유럽연합(EU)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가 베를린에서의 남북 교류·협력 및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과 관련한 '불편한 현실'을 언급하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 교수는 독일의 여러 재단 및 연구소들이 북한에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북한의 학생들을 초청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비자 문제로 진행이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포럼에 독일 외무부의 동아시아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상황이었다.
실제 독일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하려 해도 과정이 까다롭고 문화, 스포츠 교류 등과 관련해서도 북측 인사들의 독일 입국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북한이 옛 동독시절부터 터를 잡아 온 베를린에서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을 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이어 토마스 쉐퍼 전 주북한 독일대사는 한·미·일 동맹의 유지가 중요하다면서 북한에 조금 더 안정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북한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미카엘 가이어 전 주한 독일대사는 일본이 국제적인 분쟁지역화하려는 독도를 놓고 안도라처럼 한일 양국이 독도에 대한 주권을 공유하는 방안을 제시해 한국 측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에 윤 전 장관은 "미국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안보 불안감을 고려하지 않아 왔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현재 접근방식은 이전의 방식을 보완하고 있다"면서 "한일 간의 문제는 1965년 이후 지켜진 암묵적인 정경분리의 원칙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유럽연합(EU)의 한국 담당자였던 게르하르트 자바틸 박사도 "외교와 통상 문제는 별개여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동서독 분단기에도 이런 원칙이 지켜졌다"고 말해 간접적으로 일본을 지적했다.
◇ 다자주의 위기·포퓰리즘 부상 문제에 공감대
포럼에서 한국과 독일 인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자주의가 위협을 받고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독일의 분단 극복 과정이 한반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
코시크 전 의원은 기조발제를 통해 최근 옛 동독지역을 위주로 극우정당이 부상하는 것과 관련, 통일 과정에서 옛 동독지역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 등을 고찰하는 독일 사회의 분위기를 전달했다.
토마스 아베 전 콘라트 아데나워재단 한국 사무소장은 "지금 시대는 홍콩 시위 사태 등 아시아에서의 뉴스도 실시간으로 전해져와 체감도가 높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정치·외교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국가우선주의가 부상하지만, 노는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며 극복 의지를 나타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김영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소개하면서 "공동번영을 위해 발전하는 세계가 고립주의와 이익관계를 중심으로 새판을 짤 수 있다는 성찰 속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한독포럼과 함께 이번 행사를 공동주최한 KF의 이근 이사장은 축사에서 "옛 서독의 정권이 바뀌어도 신동방정책이 2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지지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협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며 "독일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는 유대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스마트 팩토리 등 디지털 협력 가능할까
포럼에서는 스마트 팩토리 등 디지털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이뤄졌다.
연구·개발(R&D)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의 중견기업에 독일의 기술이 접목될 경우 양국에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국 측 참석자들은 강조했다.
또, 한국 측 참석자들은 포럼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이후 소재·부품, 자동화 장치 등에서 독일 등으로 수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독일 측 인사들도 관심을 보였다.
특히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 겸 한독상공회의소 회장은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부품 가운데 32개 품목을 추려 독일 제품으로 대체 가능한지 독일 경제단체에 문의했다고 말했다.
20일에는 양국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한독 주니어 포럼의 '동문 네트워크 창단식'이 열린다.
한 전 총리는 창단식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의 개선을 위한 사명, 한독 양국의 독재경험'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독재에 대한 회상과 경고가 없으면 다시 독재로 회귀할 수 있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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