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간섭' 관행 깨고 의사 표시…"간츠 선호하진 않지만, 네타냐후는 안돼"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 총선 후 정부 구성으로 진통을 겪는 이스라엘에서 아랍계 정당들이 '불간섭' 관행을 깨고 차기 총리 후보로 중도 성향 청백당의 베니 간츠 대표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3년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재선을 이번에는 기필코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아랍계 정당 연합인 '조인트 리스트'를 이끄는 아이만 오데는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또다시 총리 임기를 시작하는 일이 없도록 간츠 대표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완전하고 평등한 아랍계 팔레스타인 시민의 참여가 없다면 공유할 수 있는 미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달 17일 치른 총선에서 청백당은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120석 중 33석을 얻어 다수당이 됐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2석 뒤진 31석을 차지했다.
'조인트 리스트'는 13석을 얻어 차기 의회에서 제3세력으로 부상했다.
안정적인 정부 구성을 위한 과반 의석에는 청백당과 리쿠드당 모두 의석수가 한참 부족하기 때문에 연정이 불가피하다.
이스라엘 아랍계 정당들은 지난 27년 동안 총리 후보 지명에서 중도 입장을 유지해왔다.
더욱이 아랍계 정당들은 이스라엘의 반아랍 정책에 관여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연립정부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만큼, 이번 지지 선언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랍계 정당들은 간츠 대표가 군 참모총장 재직 때인 2014년 가자 지구 군사 작전을 지휘한 것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총선 캠페인에서 연일 반아랍 감정을 자극한 네타냐후 총리를 더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지난해 네타냐후 정부가 이스라엘을 유대인 국가로 선포한 법을 제정한 것도 차별을 성문화한 것이라며 아랍계 정당들의 반발을 샀다.
AP통신은 아랍계 정당들이 간츠 대표 주도의 차기 정부 구성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를 지지하는 상황은 이스라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는 소수 아랍계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랍계 아흐마디 티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간츠 대표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네타냐후를 축출하기 위해 모든 걸 다하겠다고 유권자들과 약속했고, 그 기본 조건이 간츠를 지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랍계 정당들이 간츠 대표를 지지하고 나서자 네타냐후 총리는 "경고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유대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테러를 숭배하는 아랍계 정당들이 간츠를 총리로 지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랍계 정당 의석까지 합하면 청백당은 57석을 확보하게 되나 과반에는 4석이 모자란다. 리쿠드당은 유대계 정당들의 의석을 합하면 55석을 확보할 수 있다. 지지 세력을 합해도 양쪽 다 안정적인 연정을 꾸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스라엘에서 총리 후보는 통상 다수당의 지지를 받아 지명되지만, 대통령에게 상당한 임명 재량권이 있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청백당 대표단 면담에서 청백당과 리쿠드당이연립정부에 모두 참여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하면서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총선에서 8석을 확보하며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극우성향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아비그도로 리에베르만 대표는 유대 근본주의와 아랍계를 배제한 양대 정당의 연정을 주장하며 중립을 선언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총선 직후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청백당에 손을 내밀었으나, 청백당은 부패 혐의로 기소될 처지에 놓인 네타냐후 총리와는 손잡지 않겠다며 분명하게 선을 그어 대연정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올 4월 총선에서도 과반을 크게 밑도는 3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네타냐후 총리는 안정적인 연정 구성에 실패하자 검찰 기소를 피하려 한다는 비판 속에 다시 선거를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의석수는 더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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