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보도…트럼프 "누가 정보 넘겼나 알아야겠다"라며 색출작업 예고
변호인 "언론 보도 깊이 우려"…국가정보국장 대행 "내부고발자 권리 지지"
고발자 노출 비판에 NYT는 "독자 판단 위해 필요한 정보" 해명
(뉴욕·서울=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권혜진 기자 = 미국 워싱턴을 '트럼프 탄핵정국'으로 몰아넣은 이른바 '우크라이나 의혹'을 제기한 내부고발자의 정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중앙정보국(CIA) 소속 남성 당국자'라고 신원을 일부 공개했다.
보호받아야 할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언론이 일부 노출한 데 대한 비판과 우려가 나오자, NYT는 별도의 해명 기사를 내 '신뢰성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필요한 맥락'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비공개 행사에서 정보를 흘린 사람들을 '스파이'로 몰고 이들을 색출해 처벌하겠다는 뜻을 밝혀 우려를 더했다.
◇ NYT "내부고발자는 남성 CIA 요원"…신원 노출
NYT는 이날 3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내부고발자는 한때 백악관에서도 근무했다가 정보기관으로 복귀한 CIA 요원"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외압 의혹을 제기한 고발장이 접수된 지 6주가 지났으나 그동안 탄핵 조사를 개시한 민주당원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이 내부고발자가 속한 정보기관 수장조차도 구체적인 신원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고발자의 신원 정보에 관해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날 NYT의 보도가 처음이다. 신문은 '그'(he)라고 표기해 이 내부고발자가 남성이라는 점도 적시했다.
이 요원은 현직 대통령과 외국 정상의 통화내용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근무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내부고발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난 7월 통화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고 NYT는 부연했다.
이날 공개된 고발장에서도 내부고발자는 백악관 당국자 등으로부터 통화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발장에서 "공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미 정부 당국자들에게서 미국의 대통령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외국을 개입시키는 데 대통령직을 이용한다는 정보를 받았다"면서 "거의 모든 사례에 여러 당국자의 얘기가 서로 일치했기 때문에 나는 동료들의 설명이 믿을만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고발장에도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미 정보기관의 일원으로만 표기했다. 미국 내 16개 정보기관에는 모두 10만여명이 속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발자의 신원을 특정하기란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인 셈이다.
NYT 보도 이후에도 내부고발자의 정체에 관한 '힌트'는 계속 나왔다.
이 내부고발자는 백악관과 강하게 연결돼 있으며, 동유럽 정치에 대해 해박하고 숙련된 분석가로 짐작된다고 AFP 등 외신들이 평가했다.
◇ 트럼프, 공식행사서 "스파이" 비난…"과거 다르게 다뤘다"며 위협도
하원에서 탄핵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된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고발자와 그에게 관련 정보를 넘겨준 정부 당국자들을 겨냥해 '스파이'라는 강도높은 비난을 퍼부으면서 색출 의지를 내비쳤다.
블룸버그 통신 등이 입수해 공개한 15분짜리 녹음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직원들이 참석한 비공개 행사에서 "누가 내부고발자에게 정보를 줬는지를 알기를 원한다"면서 "그것은 스파이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똑똑했던 과거 시절에 스파이나 반역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지금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다뤘었다"며 마치 약한 위협처럼 들리는 발언을 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그는 또 내부고발자와 정보를 넘겨준 당국자들을 언급하며 "이 사람들은 역겹다, 그들은 역겹다"며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은 보고서를 본 적도 없고, 통화하는 것을 본 적도 없이 뭔가를 듣고는 봤다고 결론내린 것"이라며 내부고발자가 직접 목격한 것이 없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런 발언은 켈리 크래프트 신임 유엔대사를 비롯해 유엔 대표부 직원 50여명이 참석한 비공개 행사에서 나온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NYT는 설명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들 헌터가 우크라이나와 중국에서 수백만달러를 부적절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바위만큼 바보같은 졸린 조 바이든"이라는 표현으로 대선 라이벌을 조롱하는가 하면, 그의 아들 헌터를 가리켜 "해군에서 쫓겨났다"며 "이 방에 있는 누구와 비교해도 아는 것이 없는 그가 한 달에 5만 달러나 받는 컨설턴트가 됐다"고 언급하는 등 의혹을 부추겼다.
아울러 지난 25일 뉴욕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뉴욕에서 만났을 때 언론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한 질문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기자들)이 '압박했느냐?"고 물었다"면서 "이런 언론의 짐승들을 알지 않느냐. 그들은 짐승들이다.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인간 중 일부"라고 맹비난했다.
◇ 내부고발자 측 "언론 보도 깊이 우려"…NYT "독자 판단 위해 필요" 해명
NYT가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일부 노출한 데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내부고발자를 변호하는 앤드루 바카즈 변호사는 이날 NYT 보도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을 거부하면서 보도의 파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국가안보 및 내부고발 관련 법 전문가인 바카즈 변호사는 "내부고발자의 신원에 대한 어떤 언론 보도이든 개인을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모하며 깊이 우려된다"면서 "내부고발자는 익명의 권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비난 여론도 거세다. NYT 보도 직후 트위터 등에선 찬반 여론이 격돌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비판론자들은 이런 기사가 결국은 내부고발자의 신원 노출로 이어져 내부고발자 본인은 물론 그의 경력에도 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난이 빗발치자 NYT의 '왜 우리가 내부고발자 신원의 세부사항을 발행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내부고발자의 신뢰성에 대해 독자들이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맥락이었다"고 해명했다.
딘 베케이 편집국장은 "그가 비정치적 기관에서 일하며 고발장은 백악관에 대한 긴밀한 지식과 이해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 등을 포함해 제한적인 정보만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그가 신뢰할만한지에 대해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대행은 이날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내부고발자가 규칙대로 일을 처리한다며 옹호하는 취지로 증언했다.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알지 못한다고 강조한 매과이어 국장대행은 그가 감사관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어 통상적인 절차를 따랐다면서 "내부고발자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한편 내부고발자 지원 단체인 '내부고발자 돕기'(Whistleblower Aid)는 이 내부고발자의 법률 비용을 돕기 위한 모금 사이트를 열었으며, 사이트 개설 하루 만에 2천200명으로부터 7만9천달러를 모았다.
jun@yna.co.kr luc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