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공넘긴 北…비핵화 언급 없이 '새 계산법' 압박

입력 2019-10-01 03:38   수정 2019-10-01 05:38

美에 공넘긴 北…비핵화 언급 없이 '새 계산법' 압박
北유엔대사 총회 기조연설…실무협상 가시권 속 간결해진 메시지
1년前 '신뢰·비핵화' 강조했던 北, 이번엔 美·韓 두루 비판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북한의 30일(현지시간) 유엔총회 메시지는 미국의 '양보'를 압박하는데 맞춰졌다.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북미협상 테이블에 나오라는 기존 입장을 유엔 무대에서 재확인한 셈이다. '비핵화'를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지난해와 달리, 미국과 한국을 두루 비판하기는 했지만 그 수위를 조절했다.
올해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로 북미협상이 교착상태를 이어온 상황에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가시권에 들어온 실무협상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비핵화 언급 없이 '이젠 미국의 몫'
유엔총회 연단에 오른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우선 미국을 겨냥했다.
김 대사는 "조미 관계가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격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매달리면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들을 일삼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비판했다.
짧은 비판 메시지에 이어 곧바로 "우리는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계산법을 가질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 보고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우리가 논의할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를 표시했다"면서 "조미협상이 기회의 창으로 되는가, 위기를 재촉하는 계기로 되는가는 미국이 결정하게 된다"고 미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수위를 조절한 모양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북미 지도자 간 '톱다운' 외교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북한 측 속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유엔대사 "기회의 창이냐 위기재촉이냐 미국이 결정하게 될 것" / 연합뉴스 (Yonhapnews)
우리나라에 대해선 비판 강도를 다소 높였다.
김 대사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고 돌아앉아서는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 연습을 강행하고 있다"면서 '남조선 당국의 이중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남관계 개선은 남조선 당국의 사대적 근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 책임을 다할 때만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미 간 대화 훈풍이 이어졌던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북미 신뢰를 수차례 강조하고, 한국 정부에 대해 호의적인 언급을 잇달아 내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해 기조연설에서 "북남 사이의 정치, 군사, 인도주의, 체육문화, 경제협력을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대화가 활성화하고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높아졌다"고 호평한 바 있다.
지난해와 달리 '비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조치의 성의를 모두 보인 만큼, 더 이상의 비핵화 요구를 거둬들이고 미국의 양보만 남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립'을 거듭 강조한 것도 더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김 대사는 "적대행위들이 가중되는 오늘 정세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자립·자력의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들 것을 요구한다"면서 "자립경제 토대, 믿음직한 과학기술 역량, 자력갱생의 고귀한 전통이 있고 이는 우리의 귀중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 9분 연설, 짧아진 메시지…'가시권' 실무협상 감안?
북한은 지난해까지 리 외무상이 3년 연속 유엔총회에 참석해 일반토의 연설을 했다. 올해는 리 외무상이 불참하고 김 대사가 연설했다.
통상 국가정상급 또는 외교장관급이 서는 유엔총회 연단에 대사급을 내세운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의 기조연설은 9분 남짓으로, 지난해의 15분에서 크게 짧아졌다. 통상 회원국별 기조연설당 15분씩 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가급적 간결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북미 실무협상이 조만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주말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던 장일훈 전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도 총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장일훈 전 차석대사와 유엔을 담당하는 김창민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국장은 지난 28일 평양발 고려항공편으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바 있다.
유엔 소식통은 "리용호 외무상이 기조연설을 하지 않기로 결정된 당시에도 실무급 인사들은 유엔총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최근 논의되는 북미 간 실무협상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도 김창민 국장이 유엔총회장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유엔주재 미국 대표부에서는 '전직 대사급' 대표부 관계자가 자리를 지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차석대사급이 북한의 기조연설을 경청했다.

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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