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맹서 '인종차별철폐' 주장한 마키노 노부아키 인용하며 개헌 필요성 언급
한반도 식민지배 책임엔 '모르쇠'…'전쟁가능 개헌' 비판에 논점 흐리기
"국회의원이 개헌 논의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며 국회 압박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이 100년 전 세계의 식민지 지배 흐름에 맞서 국제 무대에서 인종평등을 주창했다는 식의 궤변을 펴며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아베 총리는 4일 개회한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행한 소신표명 연설의 막바지에 1919년 국제연맹에 일본의 전권대사로 파견됐던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1861∼1949)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아베 총리는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제연맹에서 일본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원칙으로 '인종평등'을 치켜들었다"며 "세계에서 유럽·미국의 식민지가 퍼지고 있었던 당시 일본의 제안은 각국의 강한 반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권대사였던 마키노 노부아키는 당시 의연하게 '곤란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지금을 사는 우리들도 레이와(令和·일본의 현재 연호) 신시대의 미래를 향해 이 나라가 지향하는 형태와 이상을 확실히 치켜들어야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마키노 노부아키는 1919년 2월 국제연맹 규약위원회에 일본의 전권대사로 파견돼 국제연맹의 규약에 '인종적 차별 철폐' 내용을 넣자고 주장했었다.
그는 궁내대신, 내대신을 역임한 인물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증조부다.
일본은 당시 자국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음에도 뻔뻔하게 이런 주장을 국제사회에서 했다. 이를 둘러싸고는 당시 일본 내에서도 주장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은 일본이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국주의 시절 일본을 적극적으로 미화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아베 총리가 마키노 노부아키의 이야기를 개헌 추진과 연결시킨 것에는 개헌 강행 추진에 대한 비판 여론의 논점을 흐리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일본 아베 "한국은 중요한 이웃…국가 간 약속 지켜야" (安倍晋三) / 연합뉴스 (Yonhapnews)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은 헌법 9조의 평화헌법(전력과 교전권 보유 금지) 조항을 손보는 것이어서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100년 전 당시 자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은 쏙 뺀 채 '인종 평등'을 외쳤다는 일부의 사실만을 강조하며 과거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얼버무리려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레이와 시대에 어떠한 국가를 지향할지, 이상을 논의할 자리가 (국회의) 헌법심사회"라며 "국회의원이 확실히 논의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고 야권에 개헌 논의에 참여할 것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 앞서 열린 자민당 의원총회에서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결과를 언급하며 "앞선 선거에서 약속한 것을 실행하자. 국민의 부탁에 응하는 국회가 되자"며 개헌 추진을 강조하기도 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참의원, 중의원 양원의) 헌법심사회에서 각당이 각각의 생각을 제시한 뒤 여야의 틀을 넘어 건설적인 논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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