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 한트케, 유고 내전 당시 '인종 청소' 밀로셰비치 옹호
美펜클럽·학살 생존자들, 취소 요구 등 반발…한림원 "문학상일뿐"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학살을 부인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 무슬림 학살사건 생존자)
"이 상은 정치적 상이 아니라 문학상이다. 문학적이고 미학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선정했을 뿐이다."(스웨덴 한림원 측)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오랫동안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76)가 선정된 데 반발과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수상자 철회까지 요구할 예정이라고 CNN 방송과 로이터통신 등이 11일(현지시간) 전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일 "인간 체험의 주변부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해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썼다"며 한트케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문단에선 대체로 '탈 사람이 탔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한트케의 역사 인식과 처신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증폭했다.
그는 1990년대 유고 내전에 대한 노골적인 입장과 전 세르비아 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와의 친밀한 관계로 비난을 받아왔다. 유고 대통령 출신인 밀로셰비치는 당시 유고연방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촉발해 내전을 주도했으며, 알바니아계 '인종 청소'로 악명 높았던 인물이다.
한트케는 특히 2006년에는 전범 재판을 기다리다가 구금 중 숨진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기도 했다.
그는 처신이 논란이 되자 2006년 한 인터뷰에서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니고 비극적인 인간"이라며 자신은 "작가일 뿐 재판관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의 인물이었던 만큼 자신의 수상 소식에 한트케는 "깜짝 놀랐다"면서 스웨덴 한림원 측이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살 피해자를 비롯한 각계에서 강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문학상 표현의 자유 옹호단체인 미국 펜클럽(PEN America)은 성명을 통해 수상자 발표에 "놀라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밝혔다.
미 펜클럽 측은 한트케가 자신의 공적인 목소리를 역사적 진실을 약화하고 집단학살 가해자들에 대한 대중의 도움을 제안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이 단체는 또 "전 세계에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적 지도력, 광범위한 허위정보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에, (그의 수상자 선정이) 문학계의 기대에 못 미친다"며 "노벨위원회의 문학상 선정에 깊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 학살의 생존자들은 11일 학살을 부인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문학상 선정 취소를 요구했다.
생존자 단체 '스레브레니카의 엄마들' 대표인 무니라 수바시치는 "위원회에 상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낼 것"이라며 "부끄러운 일이고, 이것이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를 걱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내전 피해자 측인 코소보의 블로라 치타쿠 미국주재 대사는 트위터에서 "훌륭한 작가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노벨위원회는 하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코소보에서 출생한 젠트 카카즈 알바니아 외무장관도 "인종청소를 부인하는 인물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다니 끔찍하다"며 "2019년에 우리가 목격하는 이 일은 얼마나 비열하고 부끄러운 행태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스웨덴 한림원의 마츠 말름 사무차장은 뉴욕타임스에 선정위원회가 문학적, 미학적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며, 한림원의 권한은 문학적 우수성을 정치적 배려와 비교해 헤아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림원 일원인 안데르스 올손도 "이는 정치적인 상이 아니고 문학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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