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 조태열 대사 "위기 아닌 위기적 환경…지혜롭게 헤쳐가야"

입력 2019-10-18 08:39   수정 2019-10-18 09:24

이임 조태열 대사 "위기 아닌 위기적 환경…지혜롭게 헤쳐가야"
특파원 간담회 "외교환경 더 어려워질 것…외교안보 국론분열 걱정"
청록파 조지훈 시인 3남…"부끄럽지 않은 아들 되기 위해 살아와"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우리 외교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외교 환경이 위기적 상황입니다.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 외교의 과제입니다"
조태열(64) 주유엔 대사가 17일(현지시간) 이임을 앞두고 뉴욕 맨해튼의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현지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지난 2016년 11월 취임한 조 대사는 약 3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이번 주 귀국길에 오른다. 197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조 대사는 귀국 후 연말께 40년간의 공직활동을 마무리하고 퇴임할 예정이다.



조 대사는 일각의 한국 외교 위기론에 대한 지적에 "제가 외교부 2차관으로 재직(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2016년)할 당시에도 우리 외교가 위기라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저는 외교가 위기라기보다는 외교환경이 위기적 상황이라고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외교 환경이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위기적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도 "그것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 외교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이런 외교적 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게 틀림없다. 떠나는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외교 환경과 대화 상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국익을 어디에 포지셔닝(위치)하는 것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런 측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대사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국론이 통일돼야 하는데 오히려 가장 분열된 모습"이라면서 "늘 그것이 걱정이었고, 공직을 떠나면서 더 큰 걱정을 하면서 (상황을) 보게 될 것 같아 제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외교안보 분야 국론분열 극복 방안과 관련, "해답은 정치권과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언론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언론과 정치권이 '커먼 그라운드'(합의점)를 위해 담론을 모아가지 않고, 원심력이 작용하는 이슈에만 매몰돼 이를 확대·재생산시키니까 (국론이) 분열된다"고 지적했다.
조 대사는 "제가 외교부 2차관을 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최근 몇 년만큼 우리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 국민이 인식한 때가 없었던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만 한 국력을 가진 나라가 우리 외교부처럼 왜소한 규모와 인력을 운영하는 나라도 드물다"며 외교력 강화를 위한 지원과 국민적 이해 제고 등을 주장했다.



조 대사는 "유엔 대사로서의 지난 3년간은 격동이고 혼돈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조 대사는 지난 15일 유엔대표부에서 개최한 개천절 기념 리셉션에서도 연설을 통해 유엔 외교 인사들을 향해 "지난 3년간은 저와 우리나라에 실로 엄청난 도전의 시간이었다"면서 "투트랙(대화-제재)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것은 제재와 압력 일변도의 정책보다 훨씬 더 힘들고 도전적이고 복잡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진전 여부에 대해 유엔 당사국들이 각각 다른 시각과 이해관계로 접근,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조 대사는 북미대화 등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 "지금은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져서 아쉬움이 있다. 어떻게든 대화와 협상에 진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그게 안 됐을 때 상황을 생각하면 큰 두려움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2017년부터 1년간 유엔 평화구축위원회(PBC) 의장과 올해 최근까지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인구기금(UNFPA), 유엔프로젝트조달기구(UNOPS) 등 3개 기구 집행이사회의 의장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큰 영광이자 특권"이었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유엔 외교 인사들로부터 PBC와 UNDP 등을 변혁시키는데 큰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와 PBC를 "탈바꿈시킨 사람(game changer)"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의 3남인 조 대사는 '조지훈 시인의 아들'로의 삶에 대해서도 풀어놨다.
조 대사는 "아버님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지조있는 선비'로 남아있고, (타계 시에도) 도하 각 신문이 마지막 선비가 타계했다는 제목을 뽑았다"면서 "약 50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보수·진보 양진영을 아우르는 지식인사회에서 아직도 존경받고 추앙받는 분이라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세상에, 또 아버지에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 살아왔고, 아버지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살아왔다"고 밝혔다. 조지훈 시인은 조 대사가 13살, 중학교 1학년이던 1968년 타계했다.
조 대사는 25세 때이던 1980년 조지훈 시인 '사갑제'에서 제문을 통해 "아버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라야 고작 코흘리개 시절의 12년, 어리광 한번 제대로 부려본 기억조차 제게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끝의 종두 자국, 손등의 상처 하나까지 아버님의 모습은 제게 정확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면서 "가끔 불같이 떨어지는 호통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닐 만큼 근엄하셨지만, 종종 학교에서 돌아온 저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우리 막내' 하시면서 뺨을 비비시던 다정하고 자상한 아버님이셨다"면서 부친을 회고한 바 있다.
조 대사는 퇴임 후 계획과 관련해 당분간 쉬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개천절 기념 리셉션에서 "무엇보다 두살짜리 외손자와 제가 돌아오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제게 다짐하신 98세 노모와 재회하는 기쁨에 저는 들떠 있다"고 밝혀, 참석한 외교 인사들로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고별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lkw77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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