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직접 관련 극단적 선택 9건…정부 무대응에 사례 더 나올까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사태로 촉발된 홍콩의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청년층의 좌절·정서적 고갈이 심화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유발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현지시간) 전했다.
간호학을 전공하는 니코 청(22)은 올 8월 31일 시위 중 경찰 앞에 나서서 총을 맞는 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다가 동료들의 만류로 그만뒀지만, 경찰에 체포되거나 심하게 다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청은 행진 중 물대포에 맞아 시위 현장을 일찍 이탈해야 했고 이후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신분증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어도 되찾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청은 "뭔가를 할 동기가 전혀 없었다. 그런 게 무의미하고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때 난 내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이후 홍콩 사회가 정치적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지만,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더 조용하면서 더 위험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홍콩 시민들이 느끼는 우울증과 불안, 급성 스트레스 등이다.
6월 이후 시위와 직접 관련된 극단적 선택 사례만 9건에 이른다. 사회복지사들은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송환법 사태 속에서 시위가 5개월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더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만 이러한 불안과 좌절을 느끼는 게 아니다.
올 7월 나온 홍콩 대학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0명 중 1명이 우울증 의심 증세, 자살 충동으로 고통받고 있다. 2000년 초보다 이런 정서적 불안을 느끼는 비율은 1.1% 증가했다.
연구 책임자인 가브리엘 렁은 시위 참가자나 비참가자나 비율에 별 차이가 없다면서 지역사회에 광범위하게 여파가 미치는 정신 건강의 대재앙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니코 청의 경우 시위 문제로 아버지와 싸운 뒤 집에서 쫓겨났고,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다. 시위 중 최루탄을 보고, 시위대가 체포되거나 경찰에 구타를 당하는 걸 보면서 7월이 됐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자살이었다.
청은 "내 삶이 피곤해 때때로 쉬고 싶었지만,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 차례라고 생각했고, 다른 시위 참가자들을 위해 (경찰 총에 맞는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청년들은 폭력에 노출됐을 때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극단으로 내몰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대 자살 연구 및 예방 센터의 입 시우 파이 소장은 "그들 중 일부는 매우 어리고 순진하고 마음이 순수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을 던져버린다"며 "심리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수 있다. 있을 수 있는 충격들이 그들에게는 매우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극단적 선택이 또 다른 극단적 선택을 낳으면서 '순교'처럼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사회복지 자원봉사 활동가인 케빈 치우(33)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고 있지만, 정부가 답하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은 시위를 계속 유지하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자들은 텔레그램 등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자살 징후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있고 사회복지사들은 심리학자들과 함께 짝을 이뤄 대응하고 있다.
심리치료사인 입 킴 칭은 "시위대 사이에 강력한 개인 상호 간 지지와 유대가 있다. 회복력과 힘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니코 청은 전공 공부에 집중하면서 가족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경찰을 볼 때마다 손가락으로 욕을 하면서 분노를 쏟아낸다. 매일 밤 공원을 달리며 체력도 관리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일이 지금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난 여전히 간호학 전공 학생이고 경찰로부터 안전하다. 난 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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