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그리스가 재앙과도 같은 지난 10여년간의 재정난을 딛고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폴리티코는 21일 극심한 불경기와 국민을 억죄는 3차례의 긴축프로그램으로 전례 없는 경제난을 겪어야 했던 그리스가 완전치는 않지만 회복단계에 들어서면서 '절반의 기적'을 이룬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스는 재앙과도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 제도는 변함없고 사회융합은 튼실하며 재정은 흑자, 그리고 좌우 극단세력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고 폴리티코는 주목했다.
지난 7월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성향의 키리아코스 마초타키스 총리는 민족주의적이고 상하 관계에 익숙한 자신이 이끄는 신민주당의 옛 관료들 대신 국제적 감각과 사업마인드를 갖춘 젊은 층 전문 관료들을 요직에 기용함으로써 그리스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민영화를 속행하고 그리스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아울러 절실한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그리스에 대한 신뢰 회복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스 경제의 바로미터 격인 수도 아테네 중심부 상가는 회복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이른바 국가부채 위기 절정 시에는 시 중심부 광장 상가 거의 모두가 문을 닫았으나 지금은 반대로 대부분의 상가가 다시 문을 열고 고객들을 맞고 있다.
그리스는 지난 10년 사이 재정난으로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2010~2016년 경제 규모는 27% 줄어들었고 실업률은 최고 27%까지 치솟았다. 젊은 층 거의 절반이 실업 상태인 셈이었다. 보건과 교육, 연금 등 모든 복지프로그램이 대폭 삭감, 축소됐다.
지난 2015년 7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EU와 IMF가 내건 구제금융 조건을 거부했을 때 그리스는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 일보 전에 몰리기도 했다.
EU 집행위원회는 그리스 탈퇴 시 단일 통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밀리에 '플랜 B'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지난 9월부터 자본통제를 완화, 4년간에 걸친 현금인출과 해외송금 제한을 철회했다.
그리스의 재정난 극복은 대부분 치프라스 총리가 이끌었던 시리자당(급진좌파연합) 노력 때문이다. 강성 좌파의 반기득권 포퓰리스트 정부를 주류사회민주당으로 변화시켰으며 내부적으로 강력한 반대가 일었던 가혹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했다.
강성 좌파 이념 노선에서 정치적 현실주의를 택한 치프라스 총리는 또 인접 마케도니아와 25년간에 걸친 국호 문제 협상을 타결 짓는 한편 경제적 지진이라는 재앙을 겪으면서 국민의 단합을 이룩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그리스 국민이라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다세대로 구성된 그리스의 독특한 가족 구조가 경제추락 시 충격 흡수장치 역할을 했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연금으로 대학에 다니는 게 가능했고 가족 구성원의 단일 수입이 많은 가족을 먹여 살렸다.
위기 상황에서 사회는 적대적으로 분열하기보다 함께 뭉쳤다. 여기에 2015~2016년 시리아 사태 등으로 수십만명의 난민들이 몰려들자 그리스인들은 난민들을 정성껏 자신의 집에 받아들였다. 민관의 연대 의식으로 무너진 국가의 부족함을 상쇄했다.
그리스는 또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양당 시스템의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지난 1974년처럼 군부가 간여하는 일은 없었다.
이민자에 대해 폭력 전술을 사용하던 극우 정당은 올해 총선 및 유럽의회 선거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채 추락했고 시리자당을 떠난 강경 좌파도 대부분의 지지를 상실했다.
그러나 경제성장 속도가 생활수준을 향상하기에는 아직 느린 편이어서 기적이 완전한 상황은 아니다. 빈곤과 실업이 아직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약 20% 국민이 빈곤 속에 살고 있고 14%는 경계 선상에 처해있다.
은행들은 아직 신규투자에 소극적이고 대출에 까다롭다. EU의 계속되는 재정 흑자 압박으로 그리스 정부는 아직 세금 인하 여력이 없다. 외부 투자의 관건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채권매입프로그램에도 아직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미초타키스 총리가 지난주 제시한 첫 예산안은 그러나 법인세와 배당세 인하 등 친기업적 투자 촉진 방안을 담고 있다. 중산층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재산세도 줄였다.
단기 수익을 노린 '핫머니'들이 그리스로 몰려들고 있으나 그리스의 경제회복은 여전히 브뤼셀(EU)이나 베를린(독일), 프랑크푸르트(ECB)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 터키와 서방과의 긴장 관계로 그리스가 다시금 터키로부터 난민 유입 압박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유럽은 그리스의 경제회복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EU는 앞서 약속한 대로 회원국들이 초기 ECB 그리스 채권 매입을 통해 얻은 이익을 그리스에 돌려줄 계획이며 미초타키스 총리는 이를 성장촉진을 위한 구조개혁에 투입할 방침이다.
EU는 또 그리스에 대한 재정 흑자 목표를 완화할 수도 있다. EU 등 국제사회의 지원과 여기에 운까지 따른다면 한 때 유럽의 수치로 여겨졌던 미초타키스 총리의 그리스 정부는 경제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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