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화당원 '린칭' 기억해야"…'백인 지지층 결집' 재선 노림수 시각도
민주당 "궁지 몰릴 때마다 '인종폭탄' 투하" 비난…공화당서도 비판론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자신에 대한 미 하원의 탄핵 조사를 '린치'(lynch·처형)에 비유했다가 또다시 부적절한 인종적 언사로 갈등을 유발한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내년 재선 도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잊힐 만하면 인종차별 논란을 촉발하면서 정치적 공방을 불러일으키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탄핵 조사를 진행 중인 민주당을 향해 맹공을 퍼부으면서 '린칭'(lynch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언젠가 한 민주당원이 대통령이 되고 공화당이 하원에서 승리한다면, 근소한 차이라 하더라도, 공화당은 정당한 절차나 공정성, 법적 권한 없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공화당원은 여기서 목격하고 있는 것, 린칭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린치 또는 린칭은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 백인우월주의들이 흑인을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처형하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다.
블룸버그통신은 한 시민단체를 인용해 1882년부터 1968년까지 4천700명 이상의 린치가 있었고, 그중 거의 4분의 3이 흑인 피해자였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 원내총무는 "이것은 어떤 대통령도 자신에게 적용해선 안 되는 단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한 표결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급진적 흑인운동 단체 출신인 바비 러시 하원 의원은 "당신은 이 나라를 세운 이래 나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처형됐는지 아느냐"며 해당 트윗 삭제를 요구했다.
흑인의원 모임 의장인 캐런 배스 민주당 하원 의원은 "당신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이런 '인종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우리는 이 미끼를 삼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베니 톰슨 하원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인종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인 공화당에서도 이번 발언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 조사 역시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유감스러운 단어 선택"이라며 "우리 역사를 고려할 때 나는 린칭과 비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튠 상원 원내총무는 "그것은 어떤 문맥에서라도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고, 애덤 킨징어 하원 의원은 "우리 역사의 고통스러운 채찍을 정치에 비교할 순 없다"며 즉각적 철회를 요구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탄핵 조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은 탄핵 조사를 가짜이자 우스운 일이라고 평가한 뒤 "이것은 모든 의미에서 린칭"이라고 엄호했고, 짐 조던 하원 의원은 탄핵 조사를 '터무니 없는 가식'이라며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호건 기들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대통령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순간의 하나와 비교하고 있지 않다"며 "그가 설명하는 것은 분명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언론이 자신을 다뤄온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탄핵이라는 단어는 대통령에 당선된 날, 취임 선서를 하기도 전에 사용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무자비하게 공격당한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단어를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지난 7월 민주당 흑인 중진의원의 지역구이자 흑인 거주자 비율이 높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역겹고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혹평했고, 민주당의 유색 여성 하원 의원 4인방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막말' 수준의 언사를 쏟아냈다.
또 아이티나 엘살바도르, 일부 아프리카 국가를 '거지소굴 같은 나라'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사태 때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맞불 시위대를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을 폈다가 거센 역풍에 휘말린 바 있다.
미 언론은 이같은 인종차별적 발언이 분열적 언사를 통해 내년 재선 도전에서 주요 공략 대상인 '노동자·백인' 유권자의 지지를 강화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