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보류는 미친 짓' 말했던 테일러, 하원 출석해 트럼프에 불리한 증언
'대가성' 증명하는 진술에 민주당 의원들 "충격적" 비판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임주영 특파원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 미 정부가 정치적 동기에 따라 우크라이나 원조를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주장했다.
AP·AF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 의혹에서 핵심 증인의 한 명으로 꼽혀온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은 22일(현지시간) 하원 비공개 증언에서 이같이 말했다.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보상 대가)는 없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그의 증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에서 민주당 대선경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의혹 수사를 종용했고, 미 관리들은 우크라이나 원조 보류를 지렛대로 삼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3개 위원회는 이 의혹을 둘러싼 탄핵 조사를 진행 중이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증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바이든 관련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대사가 자신에게 '안보 원조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러한 발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테일러는 증언 전 의회에 제출한 15쪽 분량 성명에서 "올해 8월과 9월에, 미국의 비정상적인 비공식 정책 결정 채널로 인해, 국내의 정치적 이유로 중대한 안보 지원을 보류한 것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손상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와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우크라이나 원조를 제공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난봄 우크라이나에 도착했을 때 미 관리들과 연관된 '2차 외교 채널'(secondary diplomatic channels)에 놀랐다면서 이에 대해 "이상하다"고 표현했다.
선들랜드 대사는 지난 17일 하원에 출석해 트럼프가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에 관여하는 미국 관리들에게 자신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와 함께 일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측과 접촉, 바이든 조사를 촉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 대사 대행은 일자별로 세세하게 정리한 기록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가 상세한 대화 내용을 기록과 관련 문서를 갖고 있었다고 참석한 의원들은 전했다.
그는 지난 6월 18일 백악관 예산 담당자와 통화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통해 우크라이나 원조를 보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놀라서 앉아있었다"며 이로부터 한달 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변화를 감지하고 우려가 커져 사임도 준비했었다고 증언했다.
또 지난 8월 22일 백악관의 러시아 담당 보좌관인 팀 모리슨이 통화에서 "대통령이 어떤 원조도 하길 원치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극도로 괴로웠다"고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8월과 9월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갈수록 더 우려돼" 볼턴 전 보좌관에게 편지를 썼으며 볼턴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직접 전보를 보내 이런 걱정을 전하라'는 조언을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고 CNN방송은 보도했다.
이와 함께 선들랜드 대사를 포함, 트럼프 대통령 측 관료 3인방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를 계획하면서 "누구도 감시하거나 기록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하길 원했다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앞서 미 관리들이 우크라이나 압박을 논의한 문자 메시지가 공개된 가운데 테일러는 선들랜드에게 "선거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안보 원조를 보류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트럼프 정부 태도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테일러는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가 올해 5월 경질된 이후 대행을 맡고 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를 지냈다.
10시간에 걸친 테일러의 증언이 끝난 후 민주당 의원들은 증언 수위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탄핵 조사의 핵심인 '퀴드 프로 쿼'를 입증하는 '직결선'이 마련됐다고 평했다.
디나 티투스(민주·네바다) 하원의원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당히 확실해졌다"며 "퀴드 프로 쿼가 맞다"고 말했다.
캐럴린 맬러니(민주·뉴욕) 하원의원과 딘 필립스(민주·미네소타) 하원의원은 "매우 충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데비 워서먼 슐츠(민주·플로리다) 하원의원은 "테일러 대사 대행의 증언을 들었다면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해 해외 원조를 보류했다는 것 외에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테일러 대사의 증언과 관련,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증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며 "그의 증언이 탄핵 조사에 새로운 전선을 열었다"고 평했다.
WP는 "테일러의 증언은 트럼프와 줄리아니의 명령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도움을 구한 것으로 보이는 미 관리들의 활동에 관한 빈칸을 채웠다"고 전했다.
WP는 백악관이 우크라이나 원조 및 젤렌스키의 협력 여하에 따라 양국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조건화했는지, 이것이 대통령 직권남용을 구성하는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AFP는 "트럼프가 정치적 적수에 대한 추문 조사를 우크라이나에 압박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폭발적인 증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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