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에 고개 숙인 칠레 대통령…연금·임금 개선안 등 제시

입력 2019-10-23 13:30   수정 2019-10-23 13:55

성난 민심에 고개 숙인 칠레 대통령…연금·임금 개선안 등 제시
피녜라 대통령 "시위대 요구 이해하지 못한 것 사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가 연일 격렬해지고 있는 칠레에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시위대의 분노를 달랠 사회·경제 대책을 들고 왔다.
피녜라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수십 년 동안 문제가 축적돼 온 것이 사실인데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식견 부족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국민이 보낸 메시지를 겸허하고도 분명하게 들었다"며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싶다고 덧붙였다.
칠레에선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출퇴근 피크타임 기준) 인상이 도화선이 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전시 상황 같은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잦은 공공요금 인상과 서민들에겐 너무 높은 생활 물가에 불만이 쌓여가던 시민들은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사회 불평등에 대한 참아 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학생들 주도로 7일 시작된 시위는 지난 18일 급격히 과격해졌고, 지하철역과 건물 방화, 혼란을 틈탄 상점 약탈이 이어지며 15명의 사망자도 나왔다.
정부는 주요 도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해 군에 통제권을 부여하고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령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에 '불평등' 분노 폭발…칠레 시위 더 확산 / 연합뉴스 (Yonhapnews)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하자 뒤늦게 지하철 요금 인상을 철회하며 대화를 제안했으나, "칠레는 (폭력 시위대와) 전쟁 중"이라고도 발언하는 등 시위대에 대한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전쟁 발언 이틀 만에 한결 누그러진 어조와 함께 들고나온 이번 대책엔 서민 가계부담을 줄이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폭넓은 정책이 담겼다.
칠레 일간 엘메르쿠리오에 따르면 칠레 기초연금(PBS)과 보충연금(APS)을 즉시 20%씩 올리고, 내년과 내후년에 7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연금을 추가로 인상하는 내용이 대책에 포함됐다.
또 종전 월 30만1천 페소(약 49만원)에서 인상된 35만 페소(약 57만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한편 의료비 부담 축소와 전기요금 안정화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칠레 재무부는 이러한 대책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12억 달러(약 1조4천억원)로 추산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재원 마련을 위해 월 800만 페소(약 1천300만원) 이상 버는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구간을 신설해 40%의 세율을 적용하고, 의원들과 고위 공무원들의 임금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런 대통령의 유화책을 시위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이번 사태 장기화 여부를 결정 지을 것으로 보인다.
칠레에선 23일 국영 구리기업 코델코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연대 총파업 시위가 예정돼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칠레 사회주의 경제학자 오스카르 란데레체는 이번 피녜라 대통령의 발표가 "시민들에게는 엄청난 승리"라며 "칠레 국민이 정부의 경제 어젠다를 완전히 바꿨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치평론가인 크리스토발 베욜리오는 "올바른 방향"이라면서도 "충분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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