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우크라 의혹' 갈등 고조…공화당 실력저지로 탄핵조사 파행

입력 2019-10-24 07:35  

美 '우크라 의혹' 갈등 고조…공화당 실력저지로 탄핵조사 파행
하원 비공개 증언에 공화당 몰려가 고성·입씨름…4시간반 중단 '진풍경'
공화당 "증언내용 공개하라"…민주당 "초기 조사 후 공개 예정"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물리적 저지나 충돌을 보기 힘든 미국 의회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우크라이나 의혹' 탄핵 조사의 비공개 증언에서 불리한 진술이 쏟아지자 참다못한 공화당 의원들이 떼로 몰려가 회의를 방해해 회의가 4시간 30분 이상 파행하는 이례적인 일이 빚어진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의 탄핵 조사가 본격화하면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치도 가팔라지는 양상이다.


CNN방송 등 미언론에 따르면 25명가량의 공화당 하원 의원은 이날 오전 하원의 3개 관련 상임위가 국방부 부차관보에 대한 비공개 증언을 진행하던 회의실을 급습했다.
CNN은 맷 개츠 공화당 하원 의원이 이번 실력행사를 주도했으며,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도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3개의 문을 통해 지하층에 있는 회의실로 진입한 뒤 벽을 따라 줄지어 서거나 의자에 앉아 비공개회의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공화당 의원이 탄핵 조사를 주도하는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자, 민주당 의원들도 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거짓말하고 훔치는 것이 괜찮다고 가르치려는 것이냐", "오늘 할 일이 없냐"고 맞받아치면서 회의장은 고성이 오가는 속에 혼돈 상태가 됐다.
공화당 의원들이 회의장 퇴장 요구에 응하지 않자 결국 시프 정보위원장은 얼마 후 "증언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말한 뒤 회의실을 떠났다.
한 공화당 의원은 "가지 마라"고 소리쳤고, 또 다른 의원은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걸 배짱이 없다"고 비꼬기도 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기밀정보를 다루는 비공개 증언 때 회의실 반입 금지 품목인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까지 소지했다가 뒤늦게 이를 수거해 회의실 밖으로 옮기는 일도 벌어졌다.
회의는 중단 4시간 30분여만에 어렵사리 재개됐다.


공화당의 실력저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원조를 고리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정적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수사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진술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특히 전날에는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우크라이나 외압 행사를 위해 원조를 보류했다는 폭탄 증언을 해 여권이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회의실 기습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1일 각료회의 때 공화당이 좀 더 거칠어지고 싸워야 한다고 주문한 지 이틀 만에 나온 행동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백악관에서 30명가량의 공화당 하원 의원들과 약 2시간30분 간 회의를 했고, 이때 회의실 급습에 대한 계획도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행동에 지지를 표시하면서 증언 녹취록이 공개돼야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며 녹취록 공개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의 반발은 표면상 민주당의 탄핵 조사 방식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비공개 증언에 참석할 대상을 관련 3개 상임위로 한정한 데다 증언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밀실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여권에 불리한 증언이 언론에 속속 보도되는 것은 민주당의 언론 플레이 때문이라는 불신이 팽배하다.
짐 조던 공화당 의원은 "무엇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마침내 비등점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조사 절차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의혹'의 내용을 직접 문제 삼을 수 없다는 한계에 기인한 것이기라는 분석도 있다.
더힐은 공화당이 이번 의혹을 제기한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물론 하원의 비공개 조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 내용을 문제 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의혹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가 이와 배치되는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나 나올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지금은 탄핵 조사의 초기 단계여서 증인들이 서로 말을 맞추는 것을 피하기 위해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이 단계가 지나면 녹취록을 배포하고 공개 청문회를 열겠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트럼프 결사반대' 공화당원은 비록 호흡기를 낀 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민주당원'보다 더 나쁘고 위험하다"며 이들을 '인간 쓰레기'(human scum)라고 맹비난했다.
jbry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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