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코넬대 연구진, '내장-뇌 축' 상호 작용 동물 실험서 입증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자가면역 질환이 여러 종류의 정신 질환과 연관돼 있다는 건 과학계에서 꾸준히 관찰된 사실이다.
예컨대 염증성 장 질환(IBD), 건선(乾癬), 다발성 경화증 등의 자가면역 질환 환자는 장(腸) 미생물군의 축소와 함께 불안증, 우울증, 기분 장애 등을 겪을 수 있다.
자가면역 질환과 정신 질환은 유전적 요인도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장 건강이 정확히 어떻게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장 미생물과 뇌 신경세포(뉴런) 사이의 신호 교환에 관여하는 세포 및 분자 작용 과정을 미국 코넬대 의대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관련 논문은 23일(현지시간) 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온라인에 공개된 논문 개요(링크) 등에 따르면 연구팀은, 장의 미생물군이 줄어들었을 때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규명하기 위해 생쥐 모델에 실험했다.
여기엔 항생제를 투여해 장의 미생물 수를 줄이거나, 아니면 아예 무균 상태에서 기른 생쥐를 썼다. 이런 생쥐는, 곧 닥칠 만한 위험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를 인지하는 능력이 크게 감퇴했다.
연구팀은 생쥐의 뇌에서 면역 작용을 하는 소교세포(microglia)의 RNA 염기서열을 분석해, 유전자 발현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유전자 변이는, 학습 과정에서 뇌 신경세포 연결의 재구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강한 생쥐의 소교세포에선 이런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의 공동 책임자(PI)인 코너 리스턴 정신의학 부교수는 "소교세포의 유전자 발현에 변이가 생기면 시냅스 가지치기(pruning)를 교란하고, 학습에 필수적인 시냅스 생성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한 무균 생쥐의 뇌를 관찰해, 조현병·자폐증 등과 연관되는 몇몇 종류의 대사산물 농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프랭크 슈뢰더 화학 생물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환경에 반응하는지는 본질적으로 뇌의 화학 작용이 좌우한다"라면서 "장의 미생물에서 유래한 화학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가 축적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생쥐의 장 미생물군을 복원하면 감퇴한 학습 능력을 되살릴 수 있는지도 실험했다. 실험은 태어날 때부터 생쥐의 나이를 구별해 진행했다.
그 결과 무균 생쥐는 기억 능력을 되살릴 수 있지만, 반드시 태어난 직후에 개입해야 가능하다는 게 밝혀졌다. 이는 장 미생물군의 생리 신호가 생애 초기부터 긴요한 작용을 한다는 걸 시사한다.
리스턴 교수는 "자가면역 질환과 관련된 여러 정신질환이 뇌 발달 초기의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했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데이비스 아티스 면역학 석좌교수는 "장-뇌 축(gut-brain axis)은 모든 인간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준다"라면서 "이번 연구를 계기로, 어떻게 내장이 자폐증, 파킨슨병,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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