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체류 아프간 이민자 "밀입국 냉동차는 '움직이는 무덤'"

입력 2019-10-25 16:50   수정 2019-10-25 18:14

英 체류 아프간 이민자 "밀입국 냉동차는 '움직이는 무덤'"
3년 전 같은 방식으로 죽을 고비 넘긴 이민자, 끔찍했던 기억 털어놔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마치 '움직이는 무덤' 같았어요. 공기가 전혀 안 통하는 좁고 어두운 곳에서 15∼16시간을 버티다 거의 질식할 뻔했어요."
냉동 컨테이너 트럭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국인 39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 자와드 아미리(28)는 대번에 3년 전의 끔찍했던 기억을 생생히 떠올렸다.
똑같이 사방이 막힌 냉동 컨테이너 트럭을 타고 영국에 들어오려다 거의 질식할 뻔했다는 그가 털어놓은 그 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영하 25도 '냉동 컨테이너' 안서 숨진 39명은 중국인…영국 '발칵' / 연합뉴스 (Yonhapnews)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와 프랑스 칼레 난민촌에 머물던 아미리는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브리티시 드림'의 꿈을 안고 영국행 트럭에 몸을 실었다. 7살배기 어린 남동생 아마드도 함께였다.
아미리는 밀입국을 돕는 밀수업자들이 매일 밤 컨테이너에 20∼30명을 한꺼번에 몰아넣곤 했다며 "그들은 돈을 받은 이상 죽든 살든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미리 일행이 탄 트럭에는 총 15명이 탑승해 인원수는 적은 편이었으나 그렇다고 사정이 나은 편은 아니었다.
컨테이너 안에 약품이 든 상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미리 일행은 상자와 천장 사이 50㎝ 남짓한 공간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아미리는 그곳이 "움직이는 건 물론, 일어서거나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매우 좁았다고 기억했다.
문이 닫히고 트럭이 출발한 직후에는 냉장 설비가 가동돼 몹시 추웠다.
그러다 이내 설비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자꾸만 더워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두르고 있던 담요와 옷을 벗었다. 땀이 비 오듯 나는 와중에 가지고 왔던 물도 떨어졌다.
이윽고 숨쉬기조차 어려워졌다. 아미리는 아마드가 겁에 질린 채 기침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괜찮아. 문을 열어줄 거야"라고 달랬다.
하지만 안에서 딸 수 없게 만들어진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미리 일행이 계속 운전사를 부르며 천장을 두드리니 운전사가 차를 여러 번 세우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심한 욕설을 하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일행 중 휴대전화를 가진 이들이 있었으나 강제 송환을 당할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아마드가 자신에게 휴대전화를 쥐여 준 난민촌의 구호단체 관계자에게 서툰 영어로 구출 요청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곧 "경찰을 부를 테니 움직이지 말고, 말도 많이 하지 말라"는 한 줄기 빛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마침내 경찰이 온 뒤 아미리 일행은 컨테이너를 빠져나와 이민자 쉼터로 향할 수 있었다.
3년이 흐른 현재 아미리와 아마드는 영국에 무사히 정착했다. 아미리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는 중이고, 아마드는 조종사를 꿈꾸며 관련 모금도 벌이고 있다.
아미리는 지난 23일 중국인 밀입국자들의 참극을 전해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은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39명이 목숨을 잃은 것뿐 아니라, 그만큼의 가족들이 형제자매를 잃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사고를 계기로 우리가 집과 가족을 뒤로하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돌볼 책임감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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