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5년간의 조사 끝에 형사고발 등 높은 수위의 제재를 내린 현대모비스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사건이 공정위의 완패로 끝났다.
형사 사건에서는 현대모비스 임원들에 대해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공정위가 패소했기 때문이다.
공정위에 현대모비스의 갑질 피해를 진술한 대리점들이 정작 검찰과 법원에서 나서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28일 법원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에서 현대모비스가 승소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심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심리불속행기각' 결정을 내렸다.
원심 판결이 명확한 만큼 더이상 따져볼 것도 없다는 판단이다.
공정위는 앞서 작년 2월 대리점에 부품을 강매하는 '밀어내기식' 영업을 한 혐의로 현대모비스에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면서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을 형사 고발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 사건을 2013년 처음 접수한 뒤 5년간 조사를 벌인 끝에 제재를 결정했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2010년 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4년간 과도한 매출 목표를 설정하고 1천개 대리점에 부품을 강매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 사건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위원장 시절 공정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에는 법인뿐 아니라 임원 등 개인에 대해서도 형사 고발을 하는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힌 뒤 첫 임원 고발 사례여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작년 11월 현대모비스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가 1천여개 현대모비스 대리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을 때 400여개 대리점이 응답했고, 공정위는 설문조사에서 부품 밀어내기가 있었다고 답한 대리점들의 응답 내용을 증거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상당수 대리점이 검찰에서 피해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거나 검찰 출석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대리점들의 설문조사가 문제가 됐다.
공정위가 법원에 제시한 이들 대리점의 응답서에는 대리점주의 실명이 들어가지 못했다.
어차피 현대모비스와 계속 거래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 실명으로 나설 대리점은 없었다.
서울고법은 실명이 없는 설문조사 내용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보고 현대모비스의 물량 밀어내기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대모비스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심리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했다.
대형 사건이 심리불속행으로 끝난 데 대해 공정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가뜩이나 이 사건은 현대모비스가 자진시정 방안을 이행하는 것으로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가 피해 구제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기각된 사안이다.
현대모비스는 동의의결을 신청하면서 대리점 상생기금 100억원을 출연하고 동의의결 확정일로부터 1년간 대리점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상당히 중요한 사건인데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끝낸 것은 의외"라며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갑질을 제재할 때 피해자의 진술이 결정적인데 이를 법원에서 쓰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업 갑질 사건을 담당하는 공정위 시장감시국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유사한 사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사 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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