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정부통제 가능한 '중국식 디지털경제' 지향…분산형 철학과 정반대
중국 '암호법' 제정해 가상화폐 강제인증권 마련…"국가안보 수호"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블록체인 산업의 중요성을 돌연 강조하자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하는 등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에서 크게 들썩였다.
중국은 그간 가상화폐 시장을 강력히 억제하는 정책을 펴왔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중국의 가상화폐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일관되게 중앙집중적 관리가 가능한 '중국식 디지털 경제'를 지향해왔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이번 언급이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화폐에 호재가 맞는지 신중히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24일 블록체인의 발전 동향을 주제로 한 정치국 집단학습을 주재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블록체인 산업의 혁신적 발전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중국의 중추 권력 기구인 당 정치국이 전문 기술 분야를 주제로 놓고 집단학습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시 주석의 발언에서 특히 눈여겨볼 곳은 시 주석이 '자주적 혁신'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중국이 국제적으로 블록체인과 관련한 발언권을 높이고 규정 제정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각국의 통화 주권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상화폐 발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관리 가능한 디지털 경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외부 세력에 의해 구축된 질서에 휘말리기보다는 주도적으로 게임의 판을 주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 블록체인 업계는 환호했다.
28일 중국 증시에서 신후중바오(新湖中寶) 등 100여개 블록체인 테마주들이 가격 제한폭(10%)까지 올라 거래가 정지되는 등 급등 양상을 보였다.
이런 움직임은 세계 통화 질서를 흔들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출시 임박 관측 속에서 한층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중국 인민은행은 세계 중앙은행 중 최초로 디지털 화폐 발행 준비를 사실상 마치고 발행 시점을 검토 중이다.
중국의 이번 '블록체인 굴기 선언'은 미중 간 디지털 화폐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나온 것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미 의회 청문회 증언에서 "중국은 수개월 내로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출시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우리가 여기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저커버그의 경고처럼 중국이 미국보다 법정 디지털 화폐 발행 준비에 앞서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 추구하는 디지털 경제는 철저히 정부의 관리와 계획에 따라 운용되는 것으로 점차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기존의 가상화폐 철학과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조만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도 블록체인 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중국이 현재 금지 중인 자국 내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을 다시 허가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중국은 복잡한 연산을 통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를 성사시키고 기록하고 보상을 받는 '채굴업'도 도태 산업으로 지정해 축소 또는 퇴출을 유도 중이다.
중국의 '통제 가능한 블록체인' 구상은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27일 중국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최근 '암호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암호'를 국가의 정치·경제 안보 수호와 직결되는 국가의 전략적 자원으로 규정하면서 국가의 엄정한 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 법은 '상업용 암호'에 기초한 제품도 국가의 강제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향후 해외 가상화폐들도 중국에서 쓰이려면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할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번 암호법 마련은 관련 산업 육성 의지를 보인 것만큼이나 디지털 경제 주권 수호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하이의 한 경제 분석가는 "중국이 블록체인 산업 발전에 의지를 보인 것을 비트코인 같은 기존의 가상화폐와 곧바로 연결해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그간 명확하게 정부의 중앙집중적 관리가 가능한 방향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국내 지불 외에도 국가 간 외환 거래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외환 거래 자유화보다는 통제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외환관리국 루레이(陸磊) 부국장은 27일 상하이에서 열린 포럼에서 중국이 블록체인 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해 외환 거래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공개했다.
황이핑(黃益平) 베이징대 교수는 이 행사에서 중국 외환관리 당국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를 활용해 외환 유입과 유출을 더욱 면밀히 모니터링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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