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독립 주장 안 한다" 소명했지만, 선관위 끝내 후보자격 박탈
선관위 주임 갑작스레 바뀌는 등 의혹…'친중파 음모론' 제기돼
조슈아 웡 "中 중앙정부 압력으로 이뤄진 정치적 결정" 맹비난
홍콩 시민 80% 이상,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지지도 '0점'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22)이 다음 달 24일 실시되는 구의원 선거 입후보 자격을 박탈당해 '친중파 음모론'과 함께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조슈아 웡에게 통지서를 보내 그가 11월 구의원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측은 조슈아 웡이 홍콩 헌법인 '기본법'에 대한 지지와 홍콩 정부에 대한 충성 의사가 없는 것으로 명확하게 드러나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다는 입장이다.
홍콩에서 의회인 입법회 선거나 구의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관위의 자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홍콩 선관위는 '홍콩 독립' 등을 주장하는 후보에게는 선거 출마 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
'홍콩 독립'이 기본법에 규정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 것을 가리키는데, '홍콩 독립'은 중국의 주권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 선관위의 해석이다.
이처럼 선거 후보가 속한 정당의 강령을 문제 삼아 선관위가 후보 자격을 박탈한 사례는 2016년 이후 무려 10건에 달한다.
지난해 1월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데모시스토당의 강령 '민주자결'이 일국양제에 어긋난다며 당원인 아그네스 차우의 피선거권을 박탈했고, 이로 인해 아그네스 차우는 올해 3월 보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데모시스토당은 홍콩 독립 등을 포함한 홍콩의 미래를 시민들의 보통선거를 통해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조슈아 웡은 최근 선관위에 보낸 서신에서 "나와 데모시스토당은 '민주자결' 강령을 통해 홍콩 독립을 정치적 대안으로 주장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선관위는 끝내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조슈아 웡은 지난 2014년 79일 동안 대규모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 혁명'의 주역이었다. 당시 그는 겨우 17세의 나이에 하루 최대 5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최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안) 반대 시위에도 활발하게 참여했으며, 미국, 독일 등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홍콩 시위에 대해 지지를 호소했다.
조슈아 웡은 다음 달 구의원 선거에서 '사우스 호라이즌 웨스트'(South Horizons West) 선거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는 친중파 정당 신진당의 주디 찬 의원과 맞붙을 계획이었다.
11월 24일 구의원 선거에서는 18개 구에서 452명의 구의원을 선출한다. 송환법안 반대시위 등의 영향으로 범민주 진영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친중파 진영이 조슈아 웡에게 후보 자격을 주지 말라는 압력을 선관위에 넣었다는 음모론이 제기된다.
'민주자결'을 주장한 또 다른 활동가 에디 추를 비롯해 1천여 명의 모든 출마자에게 후보 자격이 주어졌지만, 유독 조슈아 웡만 출마를 금지당한 것은 그의 세계적 명성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의혹을 사는 점은 지난 24일 조슈아 웡의 후보 자격 심사를 맡은 선관위 주임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조슈아 웡의 후보 자격 심사는 도로시 마 주임이 맡고 있었는데, 그는 24일 갑작스럽게 '무기한 병가'를 냈다.
빈과일보는 이와 관련해 마 주임이 조슈아 웡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칼잡이' 역할을 거부하자, 홍콩 정부가 그의 '무기한 병가'를 선언해버렸다는 항간의 소문을 전했다.
새로 조슈아 웡의 후보 자격 심사를 맡게 된 로라 량 주임도 그의 '선택' 결과에 따라 그의 가족을 살해할 수 있다는 협박에 시달리고 있어, 현재 경찰이 제공하는 안전가옥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범민주 진영은 조슈아 웡의 출마가 금지당할 것에 대비해 그가 출마를 선언했던 '사우스 호라이즌 웨스트' 선거구에 민주인사 케빈 람을 후보로 등록시켰다.
이에 따라 케빈 람이 조슈아 웡을 대신해 이 선거구에서 유세 활동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조슈아 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 선관위가 '사상경찰'로 전락했다고 비난하면서 "나는 '홍콩 독립'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적이 한번도 없지만, 선관위는 나의 발언을 왜곡하고 주관적으로 해석해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 관영 인민일보가 나를 '독립파 지도자'로 부른 점, 선관위 주임이 갑작스럽게 병가를 낸 점 등으로 미뤄 중국 중앙정부가 나의 피선거권 박탈을 위해 강력한 압력을 넣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 중앙정부가 나의 출마를 금지한 핵심 이유는 내가 미국에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 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하지만 나의 후보 자격 박탈은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더 많은 사람이 선거에 참여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슈아 웡은 11월 구의원 선거가 끝난 후 그의 피선거권 박탈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도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대를 맹비난하면서 "올해 홍콩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일 것 같으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우리는 폭력을 중단시키고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과 그 가족에 대한 '온라인 신상털기'를 근절하기 위해 홍콩 정부는 최근 법원에 경찰과 관련된 개인 자료의 공개나 이용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홍콩 법원은 이 신청을 받아들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홍콩 행정장관 교체설'에 대해서는 중국 외교부가 이를 부인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해 송환법 반대 시위를 촉발한 천퉁카이의 대만 인도에 대해서는 "대만 정부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대만 정부가 천퉁카이의 자수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한편 홍콩여론조사연구소가 시민 1천3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캐리 람 장관은 지지도는 20.2점(100점 만점)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80% 이상의 응답자는 그에게 '0점'을 부여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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