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판결 1년…日정부·기업, 판결인정 요구 시민사회와 대립(종합)

입력 2019-10-30 17:34   수정 2019-10-30 18:10

징용판결 1년…日정부·기업, 판결인정 요구 시민사회와 대립(종합)
스가 관방장관 "청구권협정으로 배상 완전 해결" 주장 되풀이
일본제철 "당시회사, 우리와 별개"…미쓰비시重 "정부 입장과 같아"
日시민사회 "배상 해결 안 돼"…정부·기업에 '피해자 인권회복' 촉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이세원 특파원 = 일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판결이 나온 지 1년이 된 30일 일본 정부와 징용 피해자를 부렸던 해당 기업은 이구동성으로 판결을 무시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역사 바로잡기 운동을 하는 일본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반성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가 악화한 것은 한국 측의 부정적 움직임이 잇따랐기 때문"이라며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1965년의 청구권협정에 의해 '최종적이고 완전히 해결됐다'고 거듭 주장했다.
스가 장관은 "청구권협정은 국제조약이고,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나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이 준수해야 하는 국제법의 대원칙"이라며 "그런데도 작년 대법원판결로 국제법 위반 상태를 만들어낸 것은 한국 측"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이나 사법권 독립을 주장하지만 모두 한국 국내의 문제일 뿐, 국제법상의 의무 위반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일본 정부는 협정상의 규정에 따라 한국 측에 양국 간 협의와 제3국을 포함하는 중재위 설치를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 상황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원인을 만들어낸 것은 오로지 한국 측"이라며 "우리는 한국 정부에 책임 위반 상태의 시정을 비롯해 계속해서 현명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시에 징용 피해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챙겼던 일본 기업도 일본 정부의 반성 없는 입장과 궤를 같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날 연합뉴스가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의하자 일본제철(日本製鐵, 닛폰세이테쓰)은 "일한청구권협정에 기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같다"며 "(일본) 정부와 협력하면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두 기업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으나 결국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으며 대법원판결이 협정 위반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같은 생각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징용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이 애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이런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와 징용 등의 역사적·구조적 책임은 일차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으나 징용 피해자가 제기한 민사 재판에서는 제3자에 해당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방패로 삼아 일본 기업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비용 부담의 최소화라는 관점에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응이다.
확정판결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지연 손해금이 가산되므로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줘야 하는 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배상금 지급을 거부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강제 매각하는 방식으로 채무를 이행하면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비용이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기업은 회계상 손해를 약간 감수하더라도 일본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전체적으로 자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동안 사회적 평판 저하 등 무형의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제철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징용 피해자를 부린 기업이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답하기도 했다.
금전 지급 여부와 별개로 징용 피해자가 겪은 인권 침해와 고통에 대해 사죄의 뜻을 표명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일본제철은 "당시의 일본제철은 우리 회사와는 별개의 회사였다"며 패전 이전에 존재했던 일본제철에 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반응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징용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구 일본제철과 피고(신일철주금)는 그 실질에 있어서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해 법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고 대법원 역시 이런 판단을 인정했다.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신닛테쓰스미킨)은 올해 4월 1일 일본제철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시민단체 2곳은 한국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1주년을 맞아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회복에 즉각 나서라고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에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과거사 바로잡기 운동을 하는 '일본제철 구(舊)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국제인권 규범에 합치하는 획기적 판결이었다"고 평가한 뒤 "이를 통해 20년 이상에 걸친 피해자들의 싸움이 보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성명은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가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하고 많은 일본 언론은 이를 추종했다"면서 "그 결과로 한국을 '국가 간 약속을 깨는 나라' 등으로 매도하는 '증오성 언설'(헤이트 스피치)이 이 나라(일본)에 만연하게 됐다"고 반성했다.



이어 성명은 아베 정권이 한발 더 나아가 대법원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지난 7월 이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까지 강행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옛 징용공들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받은 피해자라는 사실과 조선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마주하지 않은 채 오로지 한국을 멸시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또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청구권협정에 따라 제공한 5억달러 상당의 경제원조도 배상이 아닌 한국의 '독립축하금'이라고 했다면서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 주장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성명은 이어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도 아베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지금까지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강제동원으로 이익을 본 기업이 각국의 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채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일본제철은 1997년 가마이시(釜石)제철소에 동원됐던 피해자들과의 소송에서 유족들과 화해한 적이 있다며 일본제철 측이 일본 정부 눈치를 보지 말고 결단을 내린다면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일 정부가 타협의 산물로 맺은 청구권협정을 애매한 상태로 장기간 방치했던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를 한국 대법원판결이 명령한 것이라고 밝힌 성명은 한일 양국 정부와 강제동원에 관계했던 기업이 서로 지혜를 모아 하루라도 빨리 문제 해결을 모색해줄 것을 촉구했다.



'일본제철 구(舊)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이끄는 야마모토 나오요시(山本直好·54·구청 공무원) 씨 등 이 모임 회원 5명은 이날 아침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 도쿄 본사가 있는 파크빌딩 앞에서 출근길의 일본 시민들에게 판결의 취지를 알리고 일본제철 측에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거리 선전전도 벌였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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